현장의 경험이 그 사람의 실력과 전문성을 말해 주지는 않는다. 일에 대한 성과 또한 예측하지도 못한다. 단순하게 현장을 기반으로 일한 모금가의 오랜 ‘경험’이 어떤 현상에 대한 답을 줄 수도 없다. 그러나 나는 같은 현장에서 일하는 동료들과 후배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관점’은 있다. 특히 요청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내가 확인한 ‘요청’은 기술이 아닌 예법으로 다가서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요청은 사람이 사람에게 하는 것이고 사람이 사람에게 반응하는 것이고 다시 그렇게 반복되는 선순환의 구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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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청은 확실히 기술의 문제나 방식의 문제로 접근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관련 교육이나 서적들의 제목은 마치 기술이나 행위적 측면을 강조하여 우리의 일방적인 무능력과 열심만을 강요하는 듯하다. 그러나 우리는 요청하는 법이나 기술을 몰라서 못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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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하는 이유는 3가지이다. “관계, 준비, 실행” 이 세 가지가 없는 상태에서는 우리의 명분과 사명이 세계를 백만 번 변화 시킬만한 강력한 것이라도 기부자에게 ‘요청’할 수 있는 상황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요청은 공식이나 도구가 아닌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기부자와 모금가의 상황 안에서 벌어지는 것이다. 마치 한 편의 연극처럼 실제 공간과 살아 숨 쉬는 관객들 앞에서의 펼치는 연출과 시나리오, 그리고 배우의 열정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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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를 잡을 땐 귀를 잡아야 하고 닭을 잡을 땐 날개를 잡아야 하고 고양이를 잡을 땐 목덜미를 잡으면 되지만 사람은 어디를 잡아야 하나? 멱살을 잡히면 싸움이 나고 손을 잡으면 뿌리친다. 그럼 어디를?.. 마음을 잡아야 한다. 마음을 잡으면 평생 떠나지 않는다. 법륜스님의 말이다. 사람을 잡으려면 마음을 잡아야 한단다. 법륜스님의 말이어서가 아니라 누구나 고개를 크게 끄덕이게 하는 말이다. 그럼 마음을 잡으려면 어찌해야 하나? 무턱대고 마음을 보여 달라고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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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잡으려면 먼저 상대를 알아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묻고 싶은 한 가지가 있다. 당신은 마음을 잡고 싶은 대상이 있는가? 모금 현장의 오류 중 가장 큰 것이 이것이다. 대상도 없이 요청을 한단다. 요청의 기술이 필요하단다. 대상도 모르고 대상의 상태도 모르고 대상의 상황도 모르고 무엇을 요청하고 어떤 요청의 기술을 구사할 것인가? 요청예법의 시작은 정확한 대상을 확인하는 것이다. 대상의 상태와 상황은 다른 의미로는 ‘삶’이다. 상태는 과거의 삶의 누적이고 상황은 현재 삶의 진행이며 미래의 삶에 대한 예측이다. 우리는 요청의 대상 즉 상대보다는 정확히 말해서 그 대상의 삶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래야 마음을 잡을 수 있다. 내 주위에 있는 많은 기부자들과 나는 돈에 대한 이야기, 우리 조직에 대한 이야기, 사회변화에 대한 이야기만 하지 않는다. 오히려 시시콜콜한 주변의 이야기를 더 많이 한다. 재수하는 딸이 남자친구가 생겨 고민이라는 이야기, 옆 상가에 똑같은 분식점이 생겨서 속상하다는 이야기, 바지를 사간 손님이 몇 번 입어보고 바꿔달라고 행패부린 이야기 등, 이런 이야기 끝에는 기부자는 항상 먼저 나와 내 조직의 이야기를 물어준다. 요즘 기부들 많이 하나요? 장사도 잘 안되는데 기부들 많이 하지 않지요? 4월인데 이번에도 바자회 할꺼지?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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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자들은 나를 친구, 동생, 누나 혹은 상담자라고 여긴다. 그 삶의 나눔 속에서 기부자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아낌없이 준다. 그리고 나도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주실 수 있는지 조심스레 여쭙는다. 기부자가 가지고 있는 것을 달라고 해야 성공하는 것이다. 기부자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아는 것도 관계가 바탕이 되어야지 가능하다. 나는 기부자를 기부자라는 의미보다 내 삶의 동역자로 인식하고 있다. 그들의 일상과 사업터전에 나의 일상과 내 조직이 어우러져 서로에게 힘이 되고 힘을 주는 동역자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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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자는 모금가를 보고 기부를 시작한다고 한다. 그리고 기부자는 모금가가 몸담고 있는 조직에 기부한다. 그것이 쌓이면 기부자가 관심 갖고 있는 것을 해당 조직에 기부한다. 최후에는 기부자는 명분과 조직 안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과 개입을 위해 기부한다고 한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몰랐다. 그러나 많은 기부자를 만나면서, 관계를 맺어가면서 그리고 서로의 생활을 나누면서 나는 기부자들의 생각과 삶의 방식을 알게 되었고 그 안에서 그들이 나누고 싶어 하는, 그들이 이 사회에 기여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알게 되었다. 기부자들은 나에게 대한 관심에서 우리 조직에 대한 애정으로 그리고 내가 몸담고 있는 조직의 사업에 지지와 참여로 더불어 함께 성장하는 존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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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모금가협회 운영위원 정현경 (서울특별시장애인복지시설협회 사무국장 / blindnet@hanmail.net ) 서울시장애인복지시설협회 사무국장으로 사회복지 현장에서 모금활동가로 일한다. 사회복지와 경영을 전공하였으며, 사회복지사를 시작으로 기부와 모금이라는 단어가 정착되기 전부터 복지와 자원개발을 어우르고 확대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 이론이 아닌 현장에서 풀어내는 모금해법을 위해 고민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모금을 디자인하라』, 『스크루지의 마음도 여는 한국의 모금가들』(공저), 『장애인복지와 개발』(공저), 연구논문으로 『6시그마를 적용한 비영리조직의 모금활성화 연구』가 있으며, 현재 서울시사회복지협의회 등에서 정기적으로 ‘모금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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