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당신의 머릿속에 한 사람을 떠올려 보자. 그리고 지금부터 모금이나 기부가 아닌 상품에 대한 영업을 한다고 쳐보자.
1. 당신이 가지고 있는 제품의 이름을 써라.
2. 제품의 가격은 얼마인가.
3. 제품의 특성을 3가지만 기재하라.
4. 타사 제품과의 차이점과 특이점을 써라.
5. 당신이 팔아야 되는 제품을 어떤 소비자에게 팔 것인가.
6. 당신도 그 제품을 사서 사용하고 있는가.
7. 그 제품이 그 사람에게 꼭 필요한 것인가.
8. 제품의 품질과 A/S에 대해서 자신할 수 있는가.
9. 제품을 산 소비자는 다른 이에게 어떻게 말로 제품을 표현할 것 같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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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을 모금의 명분과 가치로, 소비자는 잠재기부자 혹은 기부자로, 제품의 품질을 사회변화로, 소비자의 입소문을 기부자의 평가로 바꾸어서 질문을 다시 해보자. 이 9가지의 질문은 우리의 ‘준비’를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팔아야 될 상품이 명확하지 않다. 다시 말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내세우고 있는 모금의 명분과 가치를 표현하지 못한다. 무언가 있기는 있다. 감히 없다고 말 할 수는 없지만 표현할 수 없는 안개와 같은 그 무엇이다. 가지고 있는 것이 명확하지 않는데 무엇을 기부자에게 이야기 하겠는가. 사회변화에 대한 확신이 없는데 어찌 기부자에게 동참하자고 말 할 것인가? 모금과 기부의 의미와 역할은 여러 가지로 해석된다. 목적사업의 기반, 사회변화와 사회운동, 기부자의 변화 등. 그러나 우리는 조직의 목적사업을 유지하고자 하는 재정적 측면만으로 이해하고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다. 물론 조직의 재정적 기반은 중요한 동력이다. 그 누구도 조직원과 조직의 운영을 위한 간접비 사용에 불필요한 의미를 부여해서는 안 된다. 불필요한 의미를 부여하는 누군가에게 내세울 수 있는 반론으로 사회변화와 사회운동, 기부자의 변화에 대한 우리의 준비가 증명되어야 된다.
영리조직도 최고가 아니면 살아남지 못한다. 총각네 야채가게 이영석 대표의 성공비결은 ‘최고가 아니면 팔지 않는다’이다. 최고가 아닌 상품으로는 밥벌이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은 선함과 겸손은 교양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생존의 문제와도 연결된다. 우리도 비영리조직에서의 일이 우리의 최고 ‘業’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는 ‘業’이 나와 우리 조직에게는 좋은 일이지만 남에게는 또는 지역사회에서는 필요하지 않거나 좋지 않는 일이 될 수 있음을 확인하는 점검도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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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기부자와의 비판과 질문에 두려워하지 말자. 비판과 질문이 많은 기부자들은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주기 싫으면 말지 왜 이리 질문이 많을까?’라고 괴로워하는 모금가, ‘기념품 사고 감사편지 보낼 경비로 더 많은 사업을 하라’고 충고하시는 기부자의 충고는 유쾌하지만은 않다. 그러나 질문이 많다는 것은 관심이 있다는 증거이고 기부자의 충고는 우리 일에 대한 걱정이고 관심이다. C재단에서 진행한 ‘역사 관련 모금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담당자가 재능기부를 요청하기 위해 유명한 가수를 찾아갔다. 다행히 만나서 이야기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그 가수는 자기는 그 사건에 관심이 없다는 둥, 그러나 그 배경이 무엇이냐는 둥, 그렇게 한다고 그 문제가 해결되겠냐는 둥, 사람들의 관심이 유지될까 라는 염려까지… 두 시간 동안 그 사람이 쏟아내는 부정적 질문으로 애를 먹었다고 한다. 그래서 정말 목까지 차오르는 ‘차라리 거절을 하지 왜이리 질문이 많은 거야’ 이 말을 끝내 하지 못하고 돌아섰다고 한다. 그러나, 그 가수는 얼마뒤 참여의사를 밝혔다. 자신의 재능은 물론 사람들과의 연대까지 이어주는 능동적인 관여를 했다고 한다. 당신의 질문은 단순한 질문이 아닌 참여를 위한 이해의 과정이었고 단체에 대한 신뢰, 담당자에 대한 진정성을 확인하는 작업이었다고 한다. 나는 가끔 기부자들이 존경스럽고 무서울 때가 있다. 기부자는 일방적이고 의미없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 아까 이야기한 측은지심의 요인이던 자아실현이던 간에 돈이건 시간이건 재능이건 의미 없이 주지 않는다. 가끔 어떤 기부자는 모금가의 기여도 확인한다. 그리고 모금가의 기여가 기부요인으로 작용할 때도 있다. 나는 모금가의 기여도 또 다른 ‘준비’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모금가가 기여한 만큼 기부가 되는 것을 많이 보아왔다. 기여의 의미는 모금가의 열정, 진정성, 확신 일 수도 있으며, 실제 참여의 의미도 된다. 그래서 모금을 잘하는 사람들은 기부도 많이 한다. 기부를 많이 하면 기부자의 맘을 이해할 수 있고, 기부를 요청하는 것이 더 당당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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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가까운 곳에 기부자가 있다. 상대의 맘을 잘 알고 기부를 좀 더 편하게 할 수 있는 대상이 누구일까? (명분에 대한 확신과 이해가 선행된다면) 가족, 지인일 것이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우리 조직을 알고 있는 주변 사람들일 것이다. 대전에 소규모시설 관리자들과 모금토론을 한 적이 있었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요청 팁으로 가장 가까운 조직원들과 서비스 이용 대상자의 가족들에게 요청을 해 보시라고 말씀 드렸다. 한 달 뒤 2차 토론 교육에서 한 분이 손을 들고 말씀을 하신다. 지난 달 알려준 것처럼 서비스 대상자 가족에게 전화를 드려 자초지정을 말씀드리고 정기기부를 요청하셨다고 한다. 내용을 들으신 아버님이 “지난 3년 동안 우리 아이가 그 시설에서 서비스를 받은 모든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는 아주 정성스럽고 전문적으로 보호와 훈련을 받았습니다. 제가 그것을 잘 알고 있는데 왜 기부자가 되어드리지 못하겠습니까? 이렇게 저에게 요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난 시간동안 힘들게 장애인들에게 서비스를 지원했던 어려움이 한 순간에 인정받은 것 같은 감격 넘치는 순간이었다고 한다. 서비스대상자 가족에서 정기기부자로 역할이 변화되는 순간을 눈앞에서 겪고 보니, 내가 사업에 대한 자신과 확신만 있다면 기부자는 정말 가까이에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하였다. 기부자는 지나가는 거리의 어떤 사람이 아니라 생각보다 우리 주변에 있다. 또한 모금가의 일상적인 모습과 태도, 그리고 자세가 기부자에게 신뢰와 참여를 끌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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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언어에 대한 준비를 당부한다. 언어는 상대의 언어를 써야 한다. 우리는 은연중에 우리만이 알고 있는 언어를 사용한다. 그 언어는 사명을 강요하고 애매한 모호성을 가지고 있다. 기부자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다. 이해 못하는 기부자는 사회적 변화에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잘못으로 다른 언어를 듣고 있는 고난을 겪고 있는 것이다. 바자회를 준비하는 한 사회복지시설에 가서 바자회에 오는 지역주민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함께 ‘대본화’하는 작업을 한 적이 있었다. 조직원 각자가 써보고 앞에서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관객의 입장이 되고 보니 다들 단어와 문장에 대한 비판을 하기 시작했다. 가장 많은 비판은 우리만 알고 있는 단어의 사용이었다. 구체적으로 재활, 그룹홈, 발달장애인 등등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용어이다. 그리고 짧은 시간 안에 전달하기에는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다. 그룹 활동을 통해 단어를 정리하고 압축하는 작업을 같이했다. 조직 전체가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모두 깨달았다. 그리고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얼마나 어렵고, 일방적이고 교훈적인지(가르치려고 하는)에 대한 불손도 확인하였다. 말의 힘을 믿고, 상대가 움직일 수 있는 동사언어를 사용하고, 긍정의 말로 바꾸고, 희망찬 언어로 믿음이 반응할 수 있는 방법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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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명을 가지고 일하고 사회변화에 대한 뜨거움이 있다고 해도 결국 이것을 증명하는 방법은 바로 ‘준비’이다. 김성근 야구감독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질보다 양이 먼저이다. 나는 투수는 공을 많이 던져봐야 한다는 주의다. 던지다 보면 몸이 저절로 기억한다. 그러니까 많이 던져봐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몸이 저절로 기억하는 반복되는 훈련을 하고 있는지 매일 매일 스스로에게 확인해야 한다. 준비를 위한 성실함이 무장되어 있는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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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모금가협회 운영위원 정현경 (서울특별시장애인복지시설협회 사무국장 / blindnet@hanmail.net ) 서울시장애인복지시설협회 사무국장으로 사회복지 현장에서 모금활동가로 일한다. 사회복지와 경영을 전공하였으며, 사회복지사를 시작으로 기부와 모금이라는 단어가 정착되기 전부터 복지와 자원개발을 어우르고 확대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 이론이 아닌 현장에서 풀어내는 모금해법을 위해 고민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모금을 디자인하라』, 『스크루지의 마음도 여는 한국의 모금가들』(공저), 『장애인복지와 개발』(공저), 연구논문으로 『6시그마를 적용한 비영리조직의 모금활성화 연구』가 있으며, 현재 서울시사회복지협의회 등에서 정기적으로 ‘모금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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