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를 요청할 당시 서울문화재단의 예술지원본부장이었으나 전략제휴실 전문위원으로 보직이 변경되었습니다.
살면서 소심하고 낯가리는 사람과 겸손하고 신중한 사람이 만날 수 있는 확률은 얼마나 될까?
누가 더 적극적이어야 만남이 가능해질까? 둘의 관계는 지속될 수 있을까?
이름과 연락처가 적힌 메모 한 장.
용기를 내 전화를 건다.
“제가 CFRE(Certified Fund Raising Executive 국제공인모금전문가)에 합격하기는 했습니다만, 현장 모금가로서의 경험이 많지 않아 모금가들에게 전해줄 만한 특별한 노하우가 없습니다. 서울문화재단도 아직까지 정기후원이나 온라인 모금에서 큰 성과를 내고 있는 상황은 아니라 들려줄 이야기가 많지 않고요. 혹시 CFRE에 대해 인터뷰를 하고 싶으면 지금 열심히 공부하면서 준비하는 분들이 있으니 그분들과 함께 만나도 되고요.”
겸손인 건가? 거절인 건가?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CFRE때문에 본부장님을 뵈려는 게 아니구요, 문화예술 중간 지원 조직인 서울문화재단이……
부담 갖지 마시고 가볍게 차나 한잔 하면서 얘기하면 됩니다. ”
소심하고 낯가리는 자의 무모한 용기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사실이다.
최근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기업의 사회적 책임), CSV(Creating Shared Value 기업과 사회의 공유가치창출) 그리고 문화마케팅과 맞물려 기업들의 사회공헌사업이 문화예술분야에서도 활발히 전개되고 있지만 실제로 현장에서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지, 중•소규모의 모금단체들에게 취약한 부분인 기업 후원에 대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지, 요즘같이 먹고 살기를 걱정하는 시국에 문화예술단체와 예술가들을 위한 중간지원 조직의 지원사업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제대로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지 직접 듣고 싶었다.
서울시 산하의 문화예술지원기관인 서울문화재단, 그 재단에서 일정부분 관리자의 역할을 하고 있고 문화예술분야 최초의 CFRE이기도 한 김홍남을 만날 이유는 충분하다.
다행히 개그콘서트 킬러들의 수다에 나오는 대사처럼 그는 ‘걸려들었다.’
환경이 욕구를 만나 우연이 필연이 된 CFRE
예술지원본부장에서 최근 보직이 변경되어 제휴협력실 전문위원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그에게 ‘제휴협력’과 ‘전문위원’에 대해 물었다. 서울문화재단의 제휴협력실은 문화자원기증센터와 협찬, 기부, 국제 교류, 메세나 지원 사업을 운영하는 문화제휴팀 업무를 총괄하는 부서로 김홍남은 앞으로 이 분야의 전문가로 역할을 한다고 한다.
여기서 잠깐! 메세나(Mecenat)는 문화 예술가들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로마의 정치가 가이우스 마에케나스(Gaius Maecenas, 70~8 BC)의 이름에서 유래된 말로, 기업이 문화예술활동에 자금이나 시설을 지원하는 활동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서울문화재단의 서울메세나 지원사업 Seoul Mecenat Initiative은 ‘공공-민간 파트너쉽을 통한 문화예술 진흥(PPP in Arts: Public-Private Partnership in Arts)’을 장려하기 위해 2012년 9월부터 추진하고 있는 지원사업이다. |
2004년 서울시의 출연으로 설립된 서울문화재단은 서울시의 출연금과 자체예산, 기본재산을 가지고 공모사업이나 지원사업을 통해 예술가와 예술단체를 지원하는 배분사업만 잘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현장 모금가로 치열하게 활동하지도 않았던 재단의 중간관리자가 무슨 이유로 CFRE에 도전하게 되었을까?
“서울문화재단도 2004년부터 아주 소량이긴 하지만 개인 기부와 주로 기업기부를 통해서 기부와 모금에 대한 관심은 있었고, 기부를 받을 수 있는 법적인 장치(전문예술법인 지정 2004. 4.)들을 마련해놓고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조직적으로 모금이나 기부에 대해서 전사적인 드라이브를 건다거나 그런 관심을 적극적으로 표명하고 활용하지는 않았었죠. 2011년 박원순 시장님이 취임하면서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서울시 산하의 대학, 병원뿐만 아니라 모든 기관들이 서울시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자체적으로 기부 캠페인이나 모금활동을 통해 부족한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는 미션이 주어진 거죠.”
개인적으로 그 동안 재단에서 해 왔던 기업 후원이나 기부유치 외에 다른 모금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었고, 서울시의 정책 방향과 맞추어 가야 하는 업무적인 면에서도 교육의 필요성이 크게 다가 와 희망제작소 모금전문가 학교 심화과정 2기에 등록했다고 한다.
“모든 교육을 끝내고 자체 시험에서 2등을 했어요. 뒷풀이 자리에서 마침 비케이안(Bekay Ahn 한국기부문화연구소장)선생님 옆자리에 앉게 되었는데 CFRE에 대한 얘기를 하시더군요. 그분과의 인연은 사실 우연한 것이지만 굉장히 필연적으로 다가왔어요. 3~4년 전에 김현수(KAIST발전재단 모금가, CFRE) 선생님 기사를 보고 ‘이런 게 있구나. 한번 해볼까’ 하다가 여건이 되지 않아 잊고 지냈는데 다시 기회가 온 거죠. 나름대로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본격적으로 시작해보자 했죠.”
의도하지 않은 환경적인 요인과 그 시기에 모금시장에 관심을 가지고 교육의 필요성을 느꼈던 개인적인 욕구, 거기에 우연한 인연이 CFRE 도전의 계기가 된 셈이다.
성과? 그보다 먼저 조직과 관계
서울시의 예산이나 보조금에 의존하지 않고 좀 더 활발히 민간자원을 발굴해 내야 하는 변화된 분위기로 현장에서는 많은 고충과 불만의 목소리가 있었다. 서울시 산하 병원이나 학교, 다른 산하기관의 조직원들에게는 모금이나 기부활성화가 본연의 업무 외에 외부에서 재원을 끌어와야 한다는 부담으로 작용했다. 서울문화재단의 입장과 개인적인 불만은 없는지에 대한 물음에 의외의 답을 들었다.
“서울시가 매일 실적체크를 해서 압박을 가하지도 않았고, 저희 재단은 실적으로만 본다면 서울시에서 요구하는 수준의 체면치레는 할 수 있는 정도여서 상대적으로 큰 압박감은 없었습니다. 다만, 제가 공부를 하면서 느낀 ‘모금’은 단기간의 실적이나 성과에 집착하기 보다는 모금을 위한 조직의 구성과 오랫동안 지속된 서로간의 믿을 수 있는 관계가 기본이 되어야 하는데 그 과정이 생략되거나 무시되고 있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생겼습니다. 관계와 신뢰, 이 두 가지는 모금의 가장 밑바탕에 있어야 하는 일종의 불변이라고 생각해요. 누구든지, 어떤 분야든지 모금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하는 것이죠.”
대한민국 현장실무자들로부터 공감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모금은 지금 당장 밖으로 나가서 아무에게나 손을 내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외부의 재원을 개발하고 소액이든, 고액이든 기부를 유치하는 과정은 리더의 개인적 역량뿐만 아니라 조직의 미션과 비전에 공감하고 수용하는 조직원들이 모두 매달려야만 가능한 것이다. 흔히 우리가 인맥, 네트워크라고 말하는 오래된 관계가 그래서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기간의 성과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현실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된다. 우리나라 대부분 산하기관의 대표(혹은 기관단체장)들의 임기가 2~3년이라는 것을 감안해보면 당연히 단체장들은 임기 동안 큰 성과를 내야 하는 책임감에 시달릴 수 밖에 없다. 그 책임감은 조직원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질 테고 ‘롱텀 릴레이션십(Long Term Relationship)’의 중요성을 서로 인지하고 있다 하더라도 꿋꿋하게 지켜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변화된 분위기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찾자면 어쨌든 눈에 보이는 성과는 돈이겠지만 정책으로 인해 지금부터라도 각 기관들이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 아닐까? 물론 지금 시작하는 관계가 성숙되기까지의 과정은 멀고도 험하겠지만 말이다.
명분 없는 모금은 없다.
‘문화 예술 없다고 우리가 배고픈 것도 아니고 굶어 죽는 것도 아닌데 내가 왜 기부해야 해?’
우리는 아프거나 배고픈 사람을 보면 쉽게 지갑을 연다. 하지만 문화예술에 있어서는 혜택을 받는 것은 반기지만 기부를 하는 것에는 조금 인색하다.
최근에 지병이나 생활고로 쓸쓸히 생을 마감한 예술가들의 이야기에 가슴 아파하면서도 문화예술이라고 하면 고급생활, 개인이 선택한 취향의 형태로 예술을 생각하기 때문에 기부를 하지 않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특히 서울문화재단의 경우 문화 예술 분야의 기부를 요청하면 ‘너희는 서울시에서 지원받잖아.’ 라는 반응이 먼저 온다고 하니 불리한 조건이 이중 삼중으로 겹쳐져 있는 것이 재단의 현실이기도 하다. 다행히 온라인 모금이나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의미 있는 작품이나 예술가에게 힘을 실어주는 움직임들이 생겨나고 있지만 아직까지 모금시장에서 문화예술 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다. 소위 말하는 ‘모금의 명분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 주된 반응이다.
그래서 문화예술 분야의 모금이 명분보다는 관계와 신뢰에 더 의존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모금에서 ‘관계’를 개인적인 관계로만 이해를 하면 모금이 확산될 수 있는 기반이 없는 것이죠. 모금에서 문화예술분야의 명분이 상대적으로 약하기는 하지만 온라인 모금의 경우에는 문화예술 분야도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온라인 모금은 개인 대 개인의 관계가 아닌 불특정 대다수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오히려 모금의 명분이 더 중요하거든요. 고액기부는 조금 얘기가 다르죠. 결국 사람이 요청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중요하죠. 그런데 기부를 하시는 분들은 ‘모금가’ 즉 요청하는 사람도 보지만 그 사람의 조직, 그 조직이 하려는 일까지 연결해 총체적으로 판단을 해서 결론을 내립니다. 기부자는 모금가와 단순히 친하다(여기서 ‘친하다’는 오랜 기간 관계를 맺고 신뢰를 쌓아온 사이라는 의미)는 이유로 무조건 기부 금액을 늘리거나 반복적으로 기부를 하지 않았습니다. 명분 없이 관계만으로 지속적인 기부를 받을 수는 없는 것이죠. 명분과 관계가 서로 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상대적으로 약한 명분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에, 아직 해결은 못했지만 이미 발표된 재단의 연구용역 보고서(메세나 활성을 위한 서울문화재단 기부모델설계연구보고서) 에서 언급한 ‘캠페인을 해야 한다’거나 ‘인식을 바꿔야 한다’는 결론에는 단호하게 ‘해결책이 아니다’라고 했다.
대신 최근에 기업들이 기부나 협찬을 할 때 보이는 새로운 경향들에 맞춰 서울문화재단만의 새로운 방식을 찾아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우리는 기업에게 기부를 해달라고 요청하고, 기업은 다른 곳에 쓸 수 있는 돈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서 충돌이 생깁니다. 요청하는 입장에서는 ‘순수하게 기부를 해라’ 인데 기업가는 절대 그렇지 않다는 거죠. 미국의 경우 19세기에는 기업기부가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어요. 자본주의가 한창 성장하는 시기에 기부는 기업의 성장이나 주주의 이익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게 이유였어요. 그 이후에 조금씩 바뀌면서 1936년을 기점으로 기업에 의한 기부 프로그램이 시작되었지만 결국 경제적 이득을 목적으로 한다는 겁니다. 우리나라는 당연히 더합니다.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이나 기업 이미지 제고로 포장이 되긴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기업 매출이 늘어나기를 기대하는 거죠. 예를 들어 ‘예술단체에서 우리 이런 사업이 있으니까 기부를 하십시오’하면 잘 안 하려고 해요. 대신 기업의 요구에 맞춰서 프로그램을 약간 변형시켜주기를 원해요. 그래서 마찰이 생기죠. 그런 측면을 보면 모금기관도 기부를 이끌어 내는 방식이 변해야 한다는 거죠. 기업의 요구를 무시만 해서는 안됩니다. 기업은 끊임없이 원하는 바를 요구하는데 모금단체가 자기정체성을 기업의 요구에 매몰시켜서는 모금을 하는 의미가 없어져 버린다는 거죠. 그래서 기부를 요청하고 관계를 맺을 때 명분이나 기업에게 주어지는 효과에 대해서 처음부터 정확하게 정해놓아야 한다는 것이죠.”
여기서 잠깐! 신문기사에서 찾은 미국 기업 기부의 변천史자본주의 초기에는 기업의 기부행위를 죄악시했다. 19세기말 미국은 기업 경영진이 기부를 하는 것은 주주에게 직접적 이익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고 보고 법으로 금지했다. 1881년 매사추세츠 법원은 철도회사와 지역 음악악기 회사가 지역 철도 변에서 개최하기로 했던 음악회 협찬을 불허했다. 올드 미션 포틀랜드 시멘트(Old Mission Portland Cement)와 이 회사 주주인 헬버링 사이에 벌어진 소송은 당시 분위기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법원은 1934년 회사에 직접적인 이익을 기대할 수 없다는 이유로 올드 미션 포틀랜드 시멘트가 샌프란시스코 공동모금회에 기부를 하지 못하도록 판결했다.하지만 1952년 금기가 깨졌다. 재봉틀 회사인 A.P스미스가 프린스턴 대학에 1500달러를 기부하자 주주인 바로우는 ‘주주에게 돌아갈 이익을 왜 대학에 기부하느냐’며 무효 소송을 냈다. 뉴저지 법원은 기업의 기부행위가 직접적 이익과 무관하지만 사회적 책임의 범주로 인정한다고 판결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기업의 기부•자선행위는 법적으로 인정받게 됐다.1980년대부터 미국 포천(Fortune)지는 존경받는 기업 순위를 매길 때 사회적 책임을 포함시켰다. 다우존스는 지속가능성 지수(DJSI) 구성 종목에 사회공헌 실적을 높은 비중으로 평가하고 있다. [따뜻한 기업 함께 가는 기업] 더불어 다같이… 아름다운 세상 만들어요 (국민일보 2014. 07.30 )기사 발췌 |
문화예술지원기관의 모금가로 산다는 것
문화예술을 지원하는 공공지원기관이라는 특성상 서울문화재단은 조직의 구성도 모금의 영역도 다를 수 밖에 없다. 소액기부와 개인의 정기후원보다는 기업협찬과 기부가 우선시 되는 것도 조직의 업무 효율성 측면에서 보면 당연한 결과이다.
기업 협찬과 기부는 개인기부와는 달리 재단과 기업이 서로 주고 받는 것이 정확한, 일종의 계약이기 때문에 거절을 당하거나 중단이 되더라도 크게 상처를 받지는 않을 것 같지만 당사자들에겐 다른 차원의 상처가 기다리고 있었다.
“거절을 당하는 건 누구든지 상처가 되죠. 재단 전체 조직을 보았을 때 거부, 거절의 경험을 할만한 직원들이 많지 않아요. 예술지원은 우리가 예술가를 지원을 해주는 입장이고, 문화사업도 우리가 발주를 내고 용역을 주는 주체여서 거절 당한다는 상처가 어떤 건지 잘 몰라요. 순환 근무이기 때문에 모금담당부서의 직원은 요청하고 거절 당하는 일을 하고, 다른 부서의 직원은 주는 입장에서 배분을 하는 상황이다 보니 같은 조직 안에서 사실 그 상처가 더 클 수가 있어요.
모두가 상처를 안고 있다면 ‘우리 조직이 원래 그런 조직인데’하고 서로 위로할 수 있지만 일부만 그런 경험을 한다는 건 상처가 더 클 수 밖에 없죠. 자존감이 떨어진다는 얘기도 자주 하게 됩니다. 과거에 저 역시 서울시와 일하면서 많은 상황을 겪었습니다. 입장 차이로 부딪히는 경우도 있지만 시의 요구를 수용하고 화합하려고 하죠. 그런 경험이 있기 때문에 기업에서 거절을 당하는 것이 큰 문제는 아닙니다. 하지만 같은 조직 안에서 거절에 대한 상처에 공감해주고 보듬어 주는 분위기가 없으면 아무리 작은 상처도 본인이 극대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 제가 걱정하는 부분입니다.”
조직 내에서 겪는 상대적 박탈감은 겪어보지 않고는 이해가 힘들다. 나의 개인적인 경험을 돌이켜봐도 회사의 사업 부서로 지원 부서와 갈등을 겪기도 했고, 같은 조직 안에서 ‘갑’과 ‘을’이 존재하는 상황에 상처받고 떠나는 사람들을 보기도 했다. ‘그 때 그 사람을 내가 위로하고 보듬어 주었더라면……’ 하는 뒤늦은 후회가 찾아온 순간이다.
요청에 거절당하는 순간도 있지만 기업이 요청을 해 오는 경우는 즐겁기만 할까? 기부자, 특히 후원기업과 재단은 어떤 관계일까? 너무나 솔직해서 속이 시원했지만 한편으로는 ‘이 분 괜찮을까’ 걱정이 되는 답을 들었다.
“서울문화재단이 문화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기업들이 마케팅 차원에서 많은 요청을 해 왔고 저희도 그 요청을 거절하는 경우도 있었지요. 실제로는 기부를 받는 입장이지만 조건이 맞지 않으면 언제든지 거절도 할 수 있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던 거죠. 지금은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어요. 실적에 스스로 압박을 느끼고 어떻게든 만들어 내려고 하다 보니 힘들어하는 걸 볼 때가 많습니다. 모금이 조직의 재정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다른 비영리조직들과 비교하면 아직까지는 조금 여유가 있지만요.”
발굴을 위한 헌신, 관계를 지속하는 사업성과
“새로운 프로젝트에는 담당자와 책임자의 헌신이 있다고 봐야 됩니다. 맨땅에 헤딩을 하더라도 잠재기부자 조사(prospect research)를 통해서 ‘이 기업이 이 프로젝트에 관심을 가질만한 기업인가’ 미리 조사를 하고 제안을 합니다. 작년에 소규모로 프로젝트를 했던 파트너가 ‘올해 예산이 있는데 다른 거 해볼까요?’ 하고 제안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주 좋은 관계를 형성했다고 볼 수 있죠.”
그리고 서울문화재단이 기업들과 인연을 맺고 관계를 지속하는 노하우로 사업성과를 꼽았다.
“문화제휴팀이 기업후원이나 기부를 받아와서 사업부서와 매칭을 시켜줍니다. 결국 사업을 진행하는 해당부서의 역할도 중요하죠. 준비하고 조정하는 과정이 힘들지만 진행하고 나면 기업들도 만족할 만큼 좋은 성과를 냅니다. 저희들 나름대로 개선되기를 바라는 것은 사업성과를 평가하는 기준이 좀 명확해졌으면 하는 거죠. 아직까지는 감성적이고 정성적인 게 더 커요. 기업의 대표나 사업을 총괄했던 담당자의 만족도 중요하지만 지속적으로 협찬을 받고 장기적으로 프로젝트를 만들어가려면 평가에 대해 서로 고민하고 같이 합의를 하는 작업들이 필요한데 그렇지가 못한 것이 아쉽죠. 외국계 회사의 경우, 그 동안 해왔던 문화사업에 대해 관심이 없는 지사장으로 바뀌면 아무리 좋은 프로젝트라도 순간 사라져 버릴 수 있어요. 그런데 담당자가 지속적으로 해 왔던 사업들이 기업 이미지나 상품 매출에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는지를 제시할 수 있다면 그 사업은 지속될 가능성이 커지는 거죠.”
기업의 지속적인 사회공헌활동이 단순한 지원을 넘어 기업으로 환원되어 성공적인 마케팅으로 이어진 사례로 조아제약이 후원한 잠실창작스튜디오 <장애아동 창작지원 프로젝트A>를 들 수 있다. 이 프로젝트는 예술가들이 장애아동의 멘토가 되어 창작활동을 지원하고 결과물의 전시는 물론 상품패키지에 실용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순수한 기부로 시작해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창작공간을 운영하는 재단의 명분에 맞는 프로젝트를 통해 수혜자들의 작품이 상품으로 재탄생하는 마케팅은 다른 조직에서도 벤치마킹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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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기업의 기부에 있어 ‘정치적 역학관계에 따른 기부도 동기의 하나’가 될 수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 기업에서 사회공헌이나 기부를 담당하는 부서는 마케팅, 인사, 홍보 부서들 사이에서 존재의 가치를 계속 확인시켜야 부서가 존재할 수 있는 이유가 된다. 그래서 다른 부서와의 연계와 참여를 유도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조아제약의 사회공헌팀은 서울문화재단의 좋은 파트너이면서 조직에서도 존재의 이유를 충분히 입증하고 있다.
공공성과 투명성
김홍남에게는 모금과 배분에 있어 뚜렷한 기준이 있다.
“윤리의 기준은 각자의 판단이라고 생각해요. 그 판단을 위해서 꾸준히 사례를 조사하고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죠. 현장에서의 결정은 모금가가 내리지만 그 조직의 윤리적 정책(ethics policy)이 반드시 마련되어 있어야 합니다. 모금가가 결정의 주체라고 하는 것은 윤리적인 결정의 상황이 어떤 걸로 규정할 수 없는 경우가 너무 많아 어쩔 수 없이 본인의 신념이나 그 경험을 가지고 판단해야 할 상황들이 생긴다는 거죠. 그런 측면에서 서울문화재단은 공공성이 하나의 기준이 됩니다. 하이서울페스티벌은 기업이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홍보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카지노 회사가 협찬을 제안한 경우가 있었어요. 공공성의 측면에서 당연히 거절할 이유가 있죠. 그리고 투명한 정산도 하나의 기준이 됩니다. 기업이 지정기부를 하는데 정산이 불확실하거나 불투명할 여지가 있는 경우, 기업과 수혜단체가 재단을 일종의 통로로 삼는다는 판단이 서게 되면 기부를 받지 않습니다.“
투명한 정산은 배분에 있어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수혜기관 입장에서는 갑갑한 부분이 있더라도 투명하고 명확한 정산을 요구한다. 사소한 행정적인 부분들이 투명하게 공개되고 신뢰를 얻는 과정을 거쳐 기부금이 확대된 사례를 굳이 예로 들지 않더라도 모금을 하고 배분을 집행하는 기관이라면 윤리적인 측면에서 더 엄격해져야 한다는 것이 김홍남의 생각이다.
김홍남의 숙제
겸손하고 신중할 거라는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모든 질문에 분명한 기준을 갖고 기대 이상의 답변을 내놓았다. 하지만 서울문화재단이란 조직의 정체성과 최근에 시작한 온라인 모금의 전략에 대해서는 ‘숙제’라고 표현했다.
서울문화재단의 홈페이지를 방문해 보면 너무나 많은 사업들이 소개되고 있다. 예술지원과 교육을 비롯해 창작공간 운영, 축제와 이벤트까지. 다른 지.자.체 산하기관이 그러하듯 백화점식 사업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냐는 질문을 조심스럽게 던져보았다.
“시의회에서도 ‘서울문화재단은 업무영역이 너무 다양하다.’ 는 지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저희도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지만 본연의 영역인 예술지원은 그대로 가져가야 하고 서울시 산하기관으로서 시의 정책적 요구에 맞춰서 현장에서 사업화 하는 일들을 안 할 수 없죠.”
이것이 현실이다. 누구도 부정하거나 피할 수 없는..
아트 서울기부투게더(http://www.givetogether.or.kr/)와 해피빈(http://happybean.naver.com/)
‘기부는 또하나의 예술입니다’를 슬로건으로 2014년 11월에 런칭한 아트서울! 기부투게더(Art Seoul give Together )는 서울문화재단의 온라인 모금 플랫폼이자 문화예술 민간협력을 위한 온라인 네트워크 서비스이다. 화려했던 출범 퍼포먼스에 비해 지속적인 홍보와 프로젝트 확산, 확대의 측면에서는 아쉽다.
해피빈 재단은 네이버라는 막강한 온라인 서비스 기반과 충성도 높은 고객을 확보하고도 독립하는데 10년이 넘게 걸렸고 대형모금단체가 자체적으로 온라인 모금을 하기까지에는 오랜 기간 동안 관계를 쌓아온 기부자들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오프라인과 온라인이 시너지를 얻을 수 있겠지만 지금은 오히려 역량이 분산되고 있다는 주변의 우려도 잘 알고 있다. 김홍남은 숙제를 차근차근 해나갈 계획이다. 개별적으로 소소한 기부의 성공 사례들을 인터뷰해 성공요인을 찾아내고 도움이 필요한 단체에게는 모금가로서 자신의 역량을 아낌없이 내놓을 것이다.
김홍남의 비전- CFRE의 의미
“모금시장의 규모는 계속 커지고 있지만 앞으로 제로섬게임(zero-sum game) 같은 경쟁구조가 형성될 수도 있겠지요. 중요한 것은 파이를 키우는 노력이 필요한데 아직 제대로 그런 고민들을 하고 있지 않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모금 기술은 창의적이고 기발한 것들이 많죠. 축제에서 모금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게임에도 기부아이템을 등장시키잖아요. 그런 것들이 경쟁력이 있고 시장을 확대시킬 수 있는데 나중에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거죠. 모금가로서의 윤리성에 대해 누군가는 관심을 가져야 하지는 않겠느냐 하는거죠. CFRE를 통해서 제 나름대로 앞으로의 방향성을 생각해 봤을 때 현장 모금가로서의 활동보다는 모금가들을 지원하고 교육하고 육성하는 것이 제 역할이라 생각해요. 정해진 원칙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고 지켜야 하는 제 성격에도 맞아요.”
“인간 김홍남에게 CFRE의 의미는 인생이모작이죠. 재단에서 CFRE를 하라고 요구하진 않았어요. 아무도 몰랐어요. 승부욕이 강한 편도 아니고 시험이나 그 결과에 크게 집착하는 스타일은 아니예요.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고 싶어하는 건 있어요. 공부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응원했던 아이들에게 아빠의 합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것도 있었지만 인생이모작에 대해 절실한 부분이 더 컸어요. 요즘에는 각 자치구마다 문화재단이 많이 있습니다. 제가 재단에서 근무를 하고 시간이 지나면 자치구 문화재단의 대표가 될 수도 있겠지요. 저는 대표라는 자리에 부담감도 있고 ‘과연 내가 행복할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것보다는 돈을 많이 벌지는 못하더라도 지속적으로 일을 할 수 있고 의미가 있겠다는 걸 CFRE 공부를 하면서 발견하게 되었죠. 그래서 준비했고 운이 좋게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모금가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모금가로서 주어진 ‘일’뿐 아니라 ‘삶’에 대한 가치, 신념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긴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어색하기만 했던 모금가 김홍남과의 인터뷰도 그랬다.
일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성격, 가족, 노후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인간 김홍남의 비전에는 우연한 기회가 만들어준 CFRE의 의미가 함께 있었다.
처음에 얘기했던 현재 해 나가고 있는 일들이 조직 내에서 주어진 CFRE로서의 역할이라면 앞으로 비전에는 모금가로서, CFRE로서 김홍남에게 주어진 사회적 역할과 개인적으로 인생 이모작에 대한 기대로 잘 채워져 있었다.
모금가의 가방 대신 비하인드 스토리
“기부자들을 만나는 일이 주된 일이 아니니까 가방엔 보여줄게 별로 없는데……”
김홍남의 가방에는 특별히 보여줄 게 없다고 했지만 우리는 이미 볼만큼 본 것 같다.
그래서 그의 가방 대신 아는 사람만 아는 김홍남의 인간미 넘치는 CFRE 도전기를 부록으로 살짝 공개한다.
“50이 넘어 공부를 하다 보니 자꾸 잊어먹어요. 봤는데도 돌아서면 뭘 봤는지 생각이 안 나요. 첫 번째는 좀 거만했죠. 이렇게 저렇게 하면 되겠지 하는 생각이었는데 보기 좋게 떨어졌죠.
두 번째는 꽤 열심히 공부를 했는데 떨어졌어요. 만만치 않구나 싶은 생각에 포기할까도 했지만 주위에서 격려를 많이 해줬어요. 이 시험이 1년 동안 3번을 볼 수 있는데 다행히 세 번째 도전에서 합격했어요. 애들한테도 아빠의 도전이 성공했다는 걸 보여줘서 좀 뿌듯했죠. 결과서를 받고 확인을 하는데 너무 기뻐서 소리를 지를 뻔 했어요. 대학교 합격 때 보다 더 기뻤어요. 아내에게 전화로 합격소식을 알리면서 울먹였습니다. 나름 마음고생이 심했는데 그 과정들이 떠오르면서 너무 벅차더라구요. 얼마나 정신이 없었는지 결혼반지와 시계가 없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어요. 주머니를 뒤져도 없는 거예요. 시험장에 다시 가봐도 없어요. 그래서 잃어버렸냐고요? 반지와 시계는 제 주머니에 있었습니다. 순간 넋이 나간 거였죠. CCTV로 확인해야 되겠다고까지 했는데 찾고 나니 좀 부끄럽기도 했어요. 아, 당연히 찾았다고도 알렸습니다.”
인터뷰가 끝나고 인연, 관계, 신뢰, 기본, 절실이란 단어가 되새기며 돌아오는 길에 한 통의 메일이 도착했다. 걱정과 달리 재미있고 귀중한 시간이었고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결과적으로 좋은 만남이었고 도움이 되는 인터뷰였다는 인사와 몇 가지 수정해야 할 부분들을 정리해서 보낸 김홍남의 메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답장을 보냈다.
‘모두에게 좋은 인연이 되어준 시간이 분명합니다. 이제 잘 이어가기만 하면 되겠지요.’
우리에겐 인연, 김홍남이 기본이라 말했던 신뢰가 바탕이 된 오래된 관계를 잘 만들어가는 일만 남았다.
-Interviewer : 정현경, 이경원
-정 리 : 정현경, 이경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