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기획> 1. 안전한 기부의 판별장치는 어디에 |
.
.
모금전문가가 말하는 안전한 기부를 위한 선택
1. 안전한 기부의 판별장치는 어디에
.
.
기부는 신뢰를 담은 삶의 방식
“기부가 쉬운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기부는 삶의 방식이다. 내 것을 다른 사람, 다른 목적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마음이 생겨야 기부가 된다. 돈을 얼마나 많이 버는지 또는 재산이 얼마나 많은지는 기부와 별로 상관이 없다.
처음부터 기부를 크게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연히 방송이나 길거리에서, 또는 아는 사람으로부터 도움이 필요한 사람의 상황을 보게 되고 내 삶도 팍팍하지만 저 사람들보다는 내가 상황이 낫다는 마음에서 작게나마 돕고자 기부를 시작한다. 어떤 경위로든 몇 번 하다보면 기부는 자연스러운 것이 된다.
처음이 문제다. 한 번도 해 본적 없는 사람에게는 참 힘든 일이다. 뭔가 도전적인 상황이나 생각에 직면해야만 기부 행동을 고민한다.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나보다 어려운 이들을 기꺼이 돕고자 하는 평범한 이들의 선행이 우리나라에 부쩍 많아진 것은 큰 축복이다. 대부분의 기부자들은 돈이 많아서 또는 여유가 있어서 한다기보다는 ‘타인을 돕고자하는 삶의 태도’를 가지기 때문이다.
기부가 활성화된다는 것은 그 사회에 서로를 돌아보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뜻이다.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도움이 필요한 것을 보면 모른 체 하지 않고 도움을 제공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 사회는 사람들 간에 신뢰가 두터워지게 된다. 가난은 나랏님도 못 구한다고 하지만, 개인들이 서로를 위하고 이웃 간에 돌봄이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복지가 있을까.
.
안전하게 기부할 수 있는 판별장치는 어디에
최근 10여년 우리나라의 기부는 극적으로 활성화되었다. 이런 중에 또 한 번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사건이 터졌다. ‘새희망씨앗’이라는 이름으로 128억을 모아 유행비로 썼다니 속이 쓰리다. 선한 의지를 가진 기부자들이 마음과 주머니를 열고 있고, 수천 개의 비영리 단체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공익을 위해 애쓰는 가운데 이런 집단들이 그들의 노력과 수고를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리고 물 흐리는 미꾸라지 역할을 톡톡히 한다.
기부자들의 선량한 마음들을 이용한 사기는 일반 개인들에게 저지르는 사기 행위보다 해악이 더 크다. 기껏 용기를 낸 ‘선한 행동’을 짓밟았을 뿐만 아니라 기부하고 싶은 마음을 송두리째 앗아가고 사회적 ‘신뢰’를 무너뜨린 것이다. 그 결과 비영리의 모금 활동은 눈에 띄게 위축되고 전 국가적으로 기부금 규모는 감소된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이런 반복적인 기부 사기(charity fraud)을 규제하는 데에 매우 취약했다. 2000년대 이후 우리나라는 본격적인 복지사회로의 이행과 국제화의 흐름 안에서 필연적으로 기부 활성화를 지향하고 세제혜택이나 비영리활동 지원을 강화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부금의 모집과 관련한 법(기부금품모집과사용에관한법률)’에서는 비영리단체의 모금 활동을 규제하는 어조가 강하다. 비영리단체의 모금활동을 신뢰하지 못해 규제를 하면서 기부를 활성화를 권장해야 한다니 매우 아이러니한 일이다.
법은 기부사기를 막는데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한다. 희대의 기부사기극은 작년에도 있었다. K재단, 미르재단이라는 웃지 못할 스캔들은 법과 상식을 무시하고 권력 놀음으로 일어난 것이다. 이번에 벌어진 새희망씨앗은 버젓이 비영리기관으로 등록하고 모금을 했고 많은 사람들의 눈을 깜쪽 같이 속였다. 이들을 막기 위해 모금을 까다롭게 규제하는 법을 강화한다 해도 사기집단은 여전히 법의 감시를 피해 움직일 것이며 오히려 성실한 비영리 단체들만 피곤해진다. 작년에는 K재단 때문에 기업기부가 중단되더니, 올해는 새희망씨앗 때문에 단체들의 전화모금활동이 일체 중단되었다고 한다.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고, 사고치는 사람 따로 피해보는 사람 따로다.
법으로 못 막으면 믿고 기부할 방법은 없는 것인가?
방법은 있다. 아니 방법을 찾아야 한다. 더 이상 예전에 하던 방식대로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기부자와 단체가 서로 신뢰의 깊이를 쌓아갈 소통의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물론 개별 기관의 노력만으로 단기간에 기부정보를 알아볼 수 있게 공개하기는 어렵다. 정부와 전문가 집단이 통일된 비영리회계기준 및 모금가이드라인을 정리하고 이를 공개하는 형식을 마련해야 한다. 현재 비영리재단들이 등록된 각 정부부처들의 공익법인 관리사항과 절차는 천차만별이다. 비영리법인 등록을 하고자 하는 예비단체들이 ‘등록이 쉽고 관리 수준이 낮은 정부부처를 쇼핑’하는 건 흔한 일이며 어느 부처가 가장 까다롭고 어느 부처가 관리가 허술한지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기부자들이 비영리단체를 이해하고 판별할 수 있으려면 통일된 기준이 마련되는 것이 우선이다. 현재 여러 정부부처에 흩어져 있는 비영리단체 관리 체계를 일원화하고 통일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미국의 경우, IRS(국세청)에 신고되는 ‘990 양식’은 모든 면세적용을 받는 기부금단체(tax-exempt and tax-deductible)들로 하여금 이러한 정보들을 자세하게 기재하도록 요구한다. 현재 우리나라 국세청 신고양식은 단지 기부금 정보와 회계 정보 수준에 그치며, 그나마 기관들의 회계처리 방식이 통일되지 않고, 일반인들이 알아보기 어려운 형식이다. (한국가이드스타(www.guidestar.or.kr)의 홈페이지에는 공익법인의 투명성을 위해 국세공시정보를 몇 가지 기준으로 분류하여 제공하고 있다. 이 또한 신뢰성을 분별할 수 있는 기준으로 충분하지 않지만 단체의 윤곽을 보는 데는 도움이 된다.)
우리는 지난해 촛불집회의 위력을 기억한다. 사회가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참여는 실제로 변화를 만들어 낸다. 직접 나서서 내가 살아가는 사회의 변화를 위해, 우리 자녀 세대에게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시간을 내고 활동할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단지 기부만으로도 충분히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따라서 기부를 할 대상과 그 활동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 권리가 있다. 돈과 함께 약간의 관심을 기울일 때 단체도 기부자를 의식하며 더 성실하게 책무를 수행하게 된다.
잘 모르는 사람이 기부를 해달라고 요청할 때 무턱대고 돈부터 주기보다는 상대방에 대해 묻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누가 이 단체를 이끌고 있는지, 얼마나 오랫동안 이 일에 헌신해 왔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떤 어려움들이 있기에 도와야 하는지, 기부금들은 어떤 방식으로 사용되는지에 대해 확인해야 한다. 그런데 어디에 가서 누구에게 어떤 정보들을 요청하고 어떤 지점을 살펴보아야 하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번 연재기획을 통해서 기부자들이 기부를 할 때 참고할만한 가이드를 제시해 보고자 한다. 불법적이고 기만적인 모금행위로부터 기부자들은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이러한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정상적으로 잘 운영되는 비영리단체들 또한 보호될 수 있을 것이다. 단체의 규모가 작거나 아직까지 제대로 정리되지 못한 기관들도 이 가이드를 참고해서 기부자들에게 신뢰를 주는 소통을 강화시켜 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한국모금가협회 상임이사 황신애 ㅣ lilac1052@naver.com 한국외대 영어과, 건국대부동산대학원(석사) 졸업. 한국외대, 서울대, 그리고 건국대에서 개인/기업 고액모금과 모금캠페인 진행. 월드비전에서 기업/고액모금팀장 활동. 20년 가까이 대학 및 병원, 사회복지, 문화예술, 국제개발, 시민사회 등 대규모에서 1인 단체에 이르기까지 비영리단체 모금현장을 폭넓게 다룬 현장전문가. 우리나라 현대 기부발전사를 몸으로 경험하면서 조직과 개인, 법제도와 현장, 모금단체와 기부자 사이의 간격이 생각보다 큼을 깨닫고 기부문화 발전을 위해 기여하고자 2014년도에 현장전문가들을 중심으로 한국모금가협회를 설립함. 현재 한국모금가협회의 상임이사로 재임하면서 전국의 모금교육, 기부교육, 민간활동가교육, 모금조직컨설팅, 법제도 개선 및 유산기부 등 새로운 기부 제도 도입 제안, 전문모금가 양성 등의 활동에 주력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