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연 사태는 성금이 할머니를 위해 쓰여지지 않았다는 다소 충격적인 말에서 출발했다.
이 때 미묘한 2가지 이슈가 발생했다.
이슈1. 기부금이 잘못 쓰이고 있다는 설정이 마련되었고 정의연은 어떻게 해명할 것인지 숙제가 생겼다.
할머니의 발언을 들은 보통 사람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그럼 기부금을 할머니들 안 드리고 어디 쓴거야? 라고 묻게 된다.
그런데 이 질문에는 비약이 담겨 있다. 정의연의 모든 기부금은 위안부 할머니를 위해 직접 쓰이는 것이 옳다는 전제를 슬그머니 깔아둔다.
원래대로 하자면? ’정의연의 미션과 목적사업이 뭐길래‘를 물어야 한다.
만약 정의연의 미션(목적사업)이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생계지원’ 이라면, 현행법상 기부금의 85% 이상을 직접지원과 간접지원방식으로 할머니들의 생계지원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그런데, 현재 정의연의 미션은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활동(연구, 조사, 교육과 장학, 추모와 국제연대사업)과 전시성폭력 재발방지를 위한 활동과 피해지원이다. 따라서 할머니들을 위한 직접지원은 여러 사업중의 하나이며 기부금을 이 사업에 쓸지 말지 또는 얼마나 쓸지는 사업계획에 따라 결정된다.
그러니 할머니꼐서 성금이 할머니들에게 오지 않았다고 하신 말 때문에 정의연의 기부금 지출이 부정하다고 하는 것은 비약이다. 기부금이 정해진 목적사업 외에 썼는지 기부금 모집이나 관리 상에 진짜로 기부금에 부정이 있는지는 실제 사용내역을 확인해 보아야 알겠지만 말이다.
이 사건이 시작될 때 정의연은 먼저 단체의 정체성과 미션을 잘 설명하면서 설정을 다르게 돌려놓았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게 했더라도 언론이 그 중요성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것이라서 상황이 달라졌을지는 잘 모르겠으나 적어도 본질이 흐려지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이슈2. 정의연 미션과 목적사업, 수행방식에 대해 활동가와 할머니들의 생각이 일치하는지, 즉 당사자 간 소통의 이슈다.
비영리 단체 활동가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더 큰 열정을 가지고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
어떤 이유로든 활동가들의 목적과 목표, 활동방식 등이 할머니들의 기대와 일치하지 않았거나 할머니들이 다르게 해석하고 있었다면, 이는 문제의 씨앗이 될 가능성이 크다. 혹은 처음에는 일치했다해도 지속적으로 소통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 입장차가 생길 수도 있다. 게다가 위안부 할머니들의 고령화, 그리고 생존자가 줄어든 상황은 할머니들의 생각과 마음에 변화를 주기에 충분하다.
비영리의 미션과 목적사업은 단체의 정체성이며 존재 이유이며 생존방식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본질이다. 기부금을 받아서 일하는 단체일 경우, 기부금의 사용처는 이러한 가치체계(미션과 비전)를 중심으로 결정되어야 한다.
따라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단체의 비전과 미션, 가치에 대해 잘 모르면 단체가 일하는 방식과 기부금 사용에 대해 오해를 품거나 신뢰를 잃게 되기도 한다. 사람의 생각은 수시로 변할 수 있다.
단체는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단체의 미션과 목적사업을 알리고, 그 목적달성을 위해 어떤 노력을 경주하고, 어떤 변화와 성과들을 이루어가고 있는지, 그 과정에서 경비가 어떻게 조달되고 사용되었는지를 공유해야 한다. 이 노력이 소홀해지면 어느 순간 단체에 대한 오해가 증가할 수 있다.
이 2가지 이슈로 정의연 사태를 다 설명할 수는 없다. 이용수 할머님의 갑작스러운 발표가 어떤 계기로 촉발되었는지, 어떤 누적된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원래부터 가졌던 태도들을 정의연이 간파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인지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알 수 있으니 무리하게 추측할 일은 아니다.
분명한 것은 서로의 입장에 상당히 틈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어쩌면 윤미향 전 이사장의 비례대표 당선이 자극이 되었을 수도 있다. 할머니 입장에서는, 오랜 노력에도 불구하고 위안부 문제에 큰 진전을 이루지도 못했고 동료 할머니들은 한 분씩 세상을 떠나시는데 이 문제를 해결할 사람이라고 믿고 의지했던 활동가가 더 큰물로 나가 일하겠다고 정의연을 떠난 것이 마치 배신처럼 느껴졌거나 얼마남지 않은 생에 더 의지를 불태울 이유를 잃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이렇게 중요한 것이 미션과 고유목적사업이다. 단체의 미션을 존재의 이유라고도 한다. 존재이유는 비영리 뿐만 아니라 인간 개개인에게도 매우 중요한 문제다. 존재와 존재이유를 따지는 영역을 철학이라고 하니 비영리철학이라 해도 될 것 같다.
비영리 철학은 비영리 경영의 초석이 되기도 한다. 비영리 단체가 왜 만들어졌고, 어떤 사업을 해야 하며, 어떤 사람들이 일하고 있으며, 어떤 목적과 비전을 추구하고, 그 일하는 방식은 어떻고, 어떻게 경비를 조달하고 사용하는지, 이해관계자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종합적인 원칙을 포함한다.
나아가 사실상 단체의 고유한 비영리 철학은 우리나라 법이 어쩌지 못하는 수만개의 비영리 단체들의 행동 양식을 자율적인 방식으로 규율하는 가장 중요한 원칙이기도 하다. 바로 이런 이유로 비영리 단체의 정관의 맨 앞부분에 설립의 목적과 목적사업의 종류와 일하는 방식을 정해두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스스로 자기 검열할 수 있도록!
모든 비영리 공익법인과 단체들은 존재이유(미션)가 있다. 그 존재 이유를 상실하면 단체를 해산 하거나 또 다른 목적으로 갈아타야 한다. 어떤 일을 하든 어떤 재정을 사용하든 미션에 부합하도록 하는 것이 정석이다. 목적을 상실한 곳은 기부금을 받아서는 안 된다. 목적이 불분명한 경우도 기부금을 받아서도 안 된다. 그 목적이 반드시 직접 사업비일 필요는 없으며, 많은 경우 비영리 활동가를 위한 인건비가 가장 중요한 경비가 되기도 한다(이 부분은 모금비용와 운영비를 다룰 때 다시 언급하겠다). 그런데 이 중요한 내용을 잘 다루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단체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존재에 관한 철학이 사문화되거나 철학을 상실한 조직은 외부와의 견해차에서 발생하는 리스크를 조율하기 어려워진다.
미션과 비전은 단체의 스피릿, 즉 영혼이다. 존재이유를 박물관에 걸린 전리품으로 간주하는 조직은 토대가 약해짐을 기억해야 한다.
4 Comments
‘그 존재 이유를 상실하면 단체를 해산 하거나 또 다른 목적으로 갈아타야 한다. 어떤 일을 하든 어떤 재정을 사용하든 미션에 부합하도록 하는 것이 정석이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렇게 곪을때까지 할머니와 소통조차도 못할정도로 둔감해진 것은 아닌지?
개인적으로나 단체적으로 더 큰 자리와 넓은 장의 필요성을 차치하고
변명과 해명에 메달리지말고 할머니를 보듬을수있는 마음이 기본이다.
공공성과 도덕성이 요구되는 위치에서는 더욱 민감해야하는데…
내로남불하는 추한 모습으로 기억되지않기를 바란다.
미션과 목적이 본질입니까? 혹 그 미션과 목적을 단체 운영자와 후원자는 다르게 해석하는게 아닐까요? 미션과 목적은 후원자가 해석하는 것이지 운영자가 해석하는게 아닌 것 같습니다.
본질을 잘못파악하신듯..
안녕하세요, 좋은 의견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선생님 말씀하신 내용에 대해 저도 좀 궁금한 부분이 있어 대화하면 좋겠다고 생각되는데, 아쉬운대로 답글을 써봅니다.
미션과 목적이 본질입니까?
– 미션과 단체의 목적사업은 비영리단체가 설립될 때 가장 중심이 되는 내용이고, 우리 법률에서는 단체의 정관에 명시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이 명확하지 않으면 설립허가를 받기도 어렵습니다. 매우 철학적이기도 하지만 현실적인 내용이기도 합니다. 공익단체를 설립하는데는 사회적인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사실상 사회에서 정말 필요로 하는 일을 수행하는가에 대해서 정부도 따져보는 거지요. 그래서 미션에 대해 단체 내부자들의 생각이 명확하게 정리되고 합의가 된 이후에 법적으로도 승인을 얻어야 합니다. 일정기간 동안 지정한 공익사업을 수행하지 못하면 단체를 해산하거나 합병하라는 명령이 떨어지기도 합니다. 즉, 미션은 단체가 수행해야 하는 일상의 일이자 존재하는 이유가 되며, 정관에 목적사업으로 표시되는 일이고, 이 일을 하지 않을 경우 단체가 없어져야 하는 그런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보통 비영리의 본질이다 라고 표현합니다. 이것은 저의 주장이 아니라 경영학의 그루 피터 드러커 등 꽤 유명한 학자들이 비영리 조직에 대해 설명하는 바이기도 합니다.
혹 그 미션과 목적을 단체 운영자와 후원자는 다르게 해석하는게 아닐까요?
– 말씀하신 대로 미션과 목적에 대해 단체 운영자와 후원자의 해석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서로의 생각에 간격(gap)이 생기는 거지요.
그런데 같은 조직을 위해 일할 때, 생각의 차이가 커지면 분쟁이 생길 가능성이 그만큼 커지기 때문에, 구성원 간에 생각은 다를 수 있지만 그 간격이 너무 커지지 않도록 계속 소통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단체 운영자는 일종의 사회사업(특히 기관의 미션)에 대한 책임을 맡은 사람이므로 운영자 개개인이 임의로 사업을 쥐락펴락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는 안되겠지요. 이런 이유로 운영자들이 단체 정관에 정해진 미션을 달성하기 위해 제대로 일하고 있는지 이사회가 관리감독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이사회는 전반적으로 기능이 약한 편이라 설립자나 운영자 등의 개별 판단이 강해지고, 나아가 가끔 조직 내부에 문제가 생기기도 합니다.
한편, 후원자는 자신이 후원하는 기관을 선택할 때 그 기관의 미션을 알고 기부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 기관에 후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기부를 하면서 후원할 기관에 대해 알아보지 않는 것은, 마치 야채를 살 때 국산인지 중국산인지, 상태가 시들지 않았는지 등을 확인하지 않고 싼가격만 보고 샀다가 나중에 판 사람을 원망하게 되는 것과 비슷합니다. 물건을 고를 때는 내가 원하는 물건인지를 확인하고 사야하듯이, 기부할 때도 단체에 대한 기본 사항은 알고 기부하는게 맞습니다. 이 때문에 단체로 하여금 자신들의 기본사항을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적극 제공하라고 권장하고 안내합니다. 너무 숨겨두면 기부자가 알아보기 어려우니까요.
어쨌든 말씀하신대로 단체와 기부자가 다른 생각을 하는 상황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지만 그 상태가 바람직한 상황은 아니며, 단체와 기부자는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겠습니다. 알리는 노력, 알고자 하는 노력, 양측의 노력이 모두 필요합니다.
미션과 목적은 후원자가 해석하는 것이지 운영자가 해석하는게 아닌 것 같습니다.
–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의도하신 내용에 대해 제가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를 못하는 것일수 있습니다만, 미션과 목적은 단체 설립시 정해지거나 단체의 중대한 내부 절차를 통해서 아주 어렵게 수정될 수 있지만, 어쨌든 어느 정도 정해진 일입니다. 따라서 후원자가 해석을 어떤 방식으로 하든 그 생각을 막을수는 없지만, 후원자의 해석에 따라 단체의 미션과 목적사업이 변경될 수는 없습니다. 이는 법률과도 연결되어 있는 부분입니다. 다만, 후원자의 해석이 기관의 미션과 달라지는 것의 이유가 단체의 설명이나 안내가 부족해서 생기는 것이라면, 단체는 후원자의 이해를 돕기위해 좀 더 적극적으로 설명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반드시 누가 옳다 그르다의 문제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사람마다 관점과 가치관과 어휘력과 경험 등등 차이가 있기 때문이지요. 기관에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있어도 아주 가끔은 일부 기부자가 아예 외면하거나 자신의 고정관념 안에서 해석하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생각은 자유입니다. 그러나 미션과 목적사업은 명확하고 문서상으로도 명시되어 있는 것으로서 이 기준으로 정부부처 등에서 공익단체들을 평가하기 때문에, 기부자가 임의로 판단할 사항은 아닌 듯 합니다.
이번 정의연 사건에서 할머니들과의 갈등에서… 할머니들은 후원자가 아니라 이해당사자이지요. 할머니들은 단체가 설립할 때부터 일정 지분을 가지고 사업에 대해 의견을 내오신 분들이기 때문에, 후원자 개념과는 다릅니다. 만약 이런 이유에서 위의 내용처럼 생각하셨다면, 그 부분은 좀 다르게 설명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께서 위와 같은 의견을 주신 것에는 이 짧은 문장에 담지 않은 어떤 상황을 염두에 두시고 말씀하신 것이 아닌가 싶어서요.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을 알려주시면 거기에 맞게 알려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비영리법인의 정관 상 할머니들에 대한 직접 지원 외 사업에 쓰일 수 있는데 그에 대해 잘 알아보지도 않고 비난한다는 식으로 읽히는 글을 쓰신 것 같은데..
서비스나 재화를 제공하는 대가로 후원금을 받는게 아니라,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미션과 비젼을 제시하고 그에 동의하는 후원자들에게 후원금을 받는 겁니다.
후원하려는 쪽에서 알아서 먼저 잘 알아보고 후원을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본질적으로는 후원을 받고자하는 쪽이 자신들이 후원금을 왜 모금하며, 어떻게 사용할 예정이며 또 사용했는지 투명하고 적극적으로 밝히고 소통하는게 정상 아닙니까?
솔직히 저런 수준의 후원금 관리를 하는 단체가 10억짜리 후원 등을 받은 본질적 이유는 “할머니들을 돕는다.”라는 명분 하나 때문아닙니까?
후원금 사용내역에 의혹이 제기되고, 개인 통장으로 크고 작은 모금을 진행하는 행위 등등 그런 모습들 자체가 비영리법인에 몸 담고 있는 입장에서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데요?
“본질적으로” 정관에 명시된 목적사업 수행에 대한 진정성과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은 비영리법인의 민낯을 지적하는게 이 칼럼의 핵심이 아니라서 당황스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