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행복이란 지나치게 거대한 테마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 전체의 거대한 행복도 결국은 매일 매일의 작은 행복을 느끼는 마음의 집합체다.”
최근에 꽤 재미있게 읽은 <우리는 섬에서 미래를 보았다_남해의 봄날>의 한 구절이다. 도시에서의 삶 대신 외딴 섬 ‘아마’로 들어가 시골 벤처 창업에 도전하며 지역, 사람들과 함께 성장하는 일본 청년들의 고군분투 비즈니스 생존기로 5년 동안의 섬 생활을 통해 생활–모두의 일–돈벌이를 충족하는 삶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새로운 삶의 방식이 아주 감동적이었다.
어쩐지 ‘행복’이란 단어는 손발을 오그라들게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나아가는 것, 그 결과물이 나는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도 기쁨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행복’ 아닐까? 말로는 쉽지만 실제 이렇게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요즘, 자신의 자리에서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주인공을 찾았다.
정.문.선
한마음한몸운동본부 입사 6년차, 현재 커뮤니케이션팀 대리로 모금담당자로 일하고 있다.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 하얀 얼굴에 웃으면 반달이 되는 예쁜 미소가 참 인상적이었다.
국제자원활동을 위해 대학을 가다?
“고 3때 공부를 하기 싫어서 신문을 뒤적거리다가 대학생 국제자원활동에 대한 기사를 봤어요. ‘아, 나도 대학만 붙으면 이런 거 할 수 있는데…’ 하는 마음에 그날 일기장에 ‘대학 붙으면 해외봉사활동을 가겠습니다.’라고 썼어요. 제가 그럴 성적이 아닌데 수시를 붙었어요. 그 때 인연을 맺은 단체가 제가 지금 일하는 한마음한몸운동본부였어요.”
(나눔운동과 생명운동을 실천하고 있는 천주교 NGO ‘한마음한몸운동본부’)
국제자원활동이 대학입학 동기라니! 하늘이 그녀의 선한 마음에 감동해 수시합격이라는 선물을 주었던 건 아닐까? 대학에 합격하자마자 제일 먼저 했던 일은 국제자원활동 신청이었다. 첫 방학을 맞아 ‘지금까지 내가 감사하며 살아온 것에 대한 보답으로 베풀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떠났던 몽골에서의 2주일은 ‘국제자원활동’의 의미와 NGO 조직을 이해하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단체의 취지는 단순히 자원봉사자를 해외에 파견하는 것이 아니라 국제자원활동이었어요. 그리고 NGO라고 하면 한비야씨처럼 활동가만을 알았는데 NGO에는 리더인 이사장이 있고, 행정‧재정‧자원활동을 관리하는 담당이 있고, 생명 파트와 국제협력, 또 그 속에는 애드보커시, 캠페인처럼 수많은 전문 분야들이 체계적으로 조직이 갖춰져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한쪽이 일방적으로 내미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맞잡는 것, 내 것을 덜어 상대의 부족함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함께 채워간다는 의미에서 국제자원활동은 나눔과도 통한다.
또, 많은 사람들이 NGO하면 열정이 넘치고 체력이 강한, 좋은 일하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되지만 NGO역시 영리기업처럼 구조화되어 있고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조직이라는 것까지 깨닫게 된 것은 굉장히 의미 있는 발견이었을 것이다.
[여기서 잠깐] 해외자원봉사’와 ‘국제자원활동’의 의미를 살펴보면 해외자원봉사가 잘 사는 나라가 가난한 나라를 도와주는, ‘일방적인 베품’으로 그들의 ‘아픔을 덜어주는 것’이라면 국제자원활동은 지역과 지역의 만남,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소중히 여기고 더불어 함께 잘 살아가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국제자원활동 매뉴얼 자원활동은 자원봉사가 아니다(유네스코한국위원회 2009)>참고
행복을 찾아와 행복을 전하는 모금가로
첫 번째 국제자원활동 경험이 대학생활 동안 방학에는 2주간의 캄보디아, 몽골 국제자원활동 staff로, 학기 중에는 행정자원 봉사와 조혈모세포기증 캠퍼스 캠페인으로 이어졌다. 자연스럽게 한마음한몸운동본부의 많은 활동들을 경험하게 되었지만 입사를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고 한다. 4학년 1학기, 전공인 소비자 경제학을 살려 진로를 결정하고 누구나 겪게 된다는 취업 스트레스를 받으며 면접을 보러 다니던 중, 맛있는 밥으로 위로를 받고 싶어 본부로 놀러왔다가 뜻밖의 행복을 발견한다.
“항상 느꼈지만 그날따라 ‘이 사람들 왜 이렇게 행복해 보이지?’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함께 의견을 나누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보였어요. 이런 일을 직업으로 가져도 참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연봉이 적을 텐데 괜찮을까’ 하고 잠시 고민도 했지만 연봉보다는 행복, 나도 행복하고 다른 사람도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일이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쪽으로 방향을 바꿨어요. 사실 그때도 모금을 하게 될 거라는 생각은 못했죠.”
“국제협력팀에서 인턴생활을 6개월 동안 하게 되었는데요, 팀 특성상 서류와 이메일, 커뮤니케이션 등 모든 업무가 영어로 이루어지다보니 영어울렁증이 생겨버렸어요. 거기다 방학동안의 국제자원활동 경험으로 제가 2주짜리 체력이란 걸 알고 있는데 이 일을 해나가려면 훨씬 더 강한 체력이 필요하더라구요. 오랜 시간 동안 지역으로 들어가 사람들을 살피고 변화를 지켜봐야 하는 장기프로젝트는 ‘이 사업이 지금 여기에 필요한 게 맞나?’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구요.”
내가 선택한 일, 그리고 주어진 일을 천직으로 여기고 묵묵히 해나가는 것도 필요하지만 나와 일이 잘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조화를 이루어 해나가고 있는지 스스로를 점검하는 것도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과정임을 보여준다. 이런 노력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는 조직의 리더나 관리자들에게 전해져 의외의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중간에 포기할 뻔 했지만 인턴을 끝내고 서류, 면접, PT를 통과해 2010년 2월에 정식으로 입사하게 되었어요. 신부님과 면담을 하면서 저는 자원개발부 모금담당자로 배정을 받게 되었어요. ‘네가 모금 담당자로서 정말 필요한 사람한테 필요한 것을 전해줄 줄 아는 사람이 되라’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 순간이 아직도 생각나요.”
NGO에서 일하게 된 기쁨에, 국제협력팀이 아니라는 사실이 더해지고 한명밖에 없는 모금담당자라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된 것에 자부심까지 가지게 되었다.
“모금담당자로 느끼는 부담은 전혀 없었어요. 모금에 대해 무지했었기 때문이겠죠. 하하하
당시에 떠오르는 모금가도 없었어요.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자들이 모금을 한다는 것도 몰랐을 때거든요. 관심이 없었으니까 보이지도 않았겠죠.”
‘모르는 게 약이다’란 표현이 아주 적절한 순간이다. 연말 불우이웃돕기나 구세군 냄비처럼 일시적인 모금활동이 분명 존재했지만7~80년대 방위성금이나 적십자회비처럼 세금인지 기부인지 잘 구별할 수 없는 모금을 제외하고 우리나라에 모금이라는 용어가 대중 앞에 자연스럽게 등장하게 된 것이 2009년 무렵이니 초보 모금가에게는 참 기막힌 타이밍에 멋진 도전이 시작된 셈이다.
다행히 모든 게 새롭고 재미있었다. 조직은 신입모금가의 작은 의견을 존중해주었고 외부기관의 모금교육도 들을 수 있도록 지원하면서 모금가로 성장하는데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준다. 덕분에 5년이 지난 지금, 모금은 혼란스럽고 어렵지만 한마음한몸운동본부의 모금담당자로, 비영리단체 모금가를 위한 모금교육 기획자로, 기부자들을 위한 나눔교육 기획자로 역할을 해 나가고 있다.
‘한 아이를 제대로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인디언의 속담처럼 모금가 한명을 제대로 키우기 위해 조직 내에서의 지원과 응원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인지를 일깨워 주는 대목이다.
한번의 인연을 소중히 이어가기
신입모금가의 열정과 전문성을 인정하고 지원해주는 준비된 조직에서 처음 한 일은 생애첫기부를 생애주기별 기부로 변화시킨 일이다.
돌기부로 시작한 생애첫기부가 기부자 가족이 본부에 와서 기념사진을 찍고 사진을 전달하는 일회성 기부였다면 생애주기별 기부는 기부자와 오랫동안 관계를 맺으면서 지속가능한 기부구조를 만들어 주었다. 담당자로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처음 백일을 맞아 기부를 시작한 아이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돌에는 축하메시지를, 매년 생일 때마다 메시지를 보내면서 기부자와 지속적으로 관계를 이어간다.
“생애첫기부를 시작한 아이가 생일 때마다 기부를 위해 우리단체를 찾아와요. 제가 모금 담당자로 일하는 동안 7번 만난 가족이 있어요. 만날 때마다 저도 반갑고 그 가족도 반갑고, 그 아이가 성장하는 모습을 저도 보고 단체의 성장을 기부자도 보게 되는 거예요. 생애 주기별 기부가 후원자와 우리 단체를 동시에 성장시키지 않나 생각해요.”
생애 첫기부 부모교육 (출처:한마음한몸운동본부 홈페이지)
전달식때 찍은 사진은 모두 단체의 홈페이지에 올리고 기부자 가족에게도 보내준다. 이 사진들이 아이의 부모가 활동하는SNS나 커뮤니티 사이트를 통해 기부프로그램과 함께 자연스럽게 노출되고 지역과 회사 사람들의 기부 참여로 이어지게 된다.
모금에 있어서 기부자들의 자발적인 입소문만큼 효과적인 홍보가 또 있을까? 우리의 영리한 잠재기부자들은 단체가 제공하는 정보와 일방적인 기부 요청에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기부자가 직접 자신의 기부경험을 나누면서 주변 사람들을 새로운 기부자로 만드는 섬세하고도 영리한 모금마케팅을 실행하고 있었다.
굳이 마케팅용어를 사용하자면 이것이 바로 바이럴 마케팅(viral marketing).
“생애주기별 기부자들에게는 감사장과 함께 아빠, 엄마가 아이들을 위해 편지를 쓰듯이 사용하도록 나눔 다이어리를 함께 보내드려요. 확인스티커는 집에 있는 스티커를 붙이면 되는데 아이가 자라면 직접 사인을 하게 하시더라구요. 생애 첫기부는 백혈병난치병 아이들 돕기와 지구촌 아프리카․아시아 아이들 돕기로 후원 분야가 나눠지는데요, 1:1 결연은 아니지만 국내의 난치병으로 아픈 아이들 치료비를 지원할 건지, 해외 아프리카 아시아 아이들을 지원할지를 선택하는 거예요. 그런데 부모님들이 바로 신청하는 게 아니라 이걸 가지고 집에서 상의 후에 전화를 해요. 아이가 자라면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후원분야를 바꾸기도 하구요”
단체의 생각을 넘어서 부모들이 자발적으로 자신들의 스타일에 맞는 방법을 찾아 자녀들에게 기부의 가치를 느끼게 해주고,후원을 위해 가족이 함께 고민하고 마음을 다해주는 모습을 보는 건 모금가만이 느낄 수 있는 큰 기쁨이 아닐까.
후원자와 단체가 함께 성장하는 모금, 기부자가 함께 고민하고 참여할 수 모금은 단순히 돈을 모은다는 행동을 넘어 소중한 인연을 이어가는 고리이다.
모금은 세상을 움직이는 부드러운 힘
국제자원활동으로 시작해 모금가로 지낸 5년 동안 많은 기부자들을 만나면서 사회 안에서 아름다운 나눔의 향기를 전하는 역할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깨닫는 순간이 있다고 한다.
“일하면서 정말 소중한 한명 한명을 만나게 되잖아요.
‘이게 정말 나눔이구나’하는 걸 느끼는 순간이 많아요. 본인이 난치병인데 난치병 아이를 위해 후원하는 분도 있고,기초수급대상자인데도 하루에 오천원씩 기부를 하는 분들도 있고요. 그런 분들의 전화를 받고 직접 만나는 것 자체가 소중해요. 제가 모금을 하고 안하고를 떠나서 ‘ 내가 어떻게 이런 분들을 만날 수 있는 역할을 하게 되었을까’를 생각하면 항상 감사하고 제 환경에 또 감사하게 되요.”
이게 바로 기부자의 힘이다. 모금가 정문선을 감동시키는 건 학식이 높고 돈이 많은 사람들이 아니라 모금을 하면서 만나게 되는 소중한 한사람 한사람이다. 아 정말 멋지다.
“제가 졸업한 학교의 슬로건이 ‘세상을 바꾸는 부드러운 힘’이예요. 저는 이 말이 좋아서 항상 수첩에 적어 놓고 다니거든요. 그걸 좀 변형해서 ‘모금은 세상을 움직이는 부드러운 힘’이다.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모금이 세상을 움직이는 부드러운 힘이라고 한다면 과연 모금의 주요 핵심인 돈에 대한 의미는 무엇일까?
“모금가로서 액수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지만 액수보다 가치인 것 같아요.
기초수급자의 5천원과 기업대표의 5억원은 분명히 액수를 놓고 보면 다르다고 할 수도 있지만 저는 똑같다고 생각하거든요.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는 게 중요하지 그게 얼마인지는 중요하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최근 미국에서는 ‘작은 모금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작은 모금보다는 큰 모금에 집중해야 된다.’라는 얘기가 나오고, 문화 예술 재단이라든지, 문화 예술을 위해 기부하는 것보다 당장 굶어죽는 아프리카 아이들을 위해 돈이 사용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어 큰 이슈가 되고 있다고 한다. 두 가지 이슈와 다른 얘기가 될 수 있지만 기부자가 현재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그리고 자기 상태에서의 금전적인 가치 비중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그래서 생사가 걸린 기초수급자의 오천 원에서 더 큰 가치를 찾게 되는지도.
큰돈으로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는 있지만 사람은 바꿀 수 없다.
작은 돈은 비록 세상은 바꿀 수 없더라도 사람을 변화시킬 수는 있을 것 같다.
우리가 느끼는 울림이 더 크니까요.
모금가와 기부자는 서로를 정성스럽게 대해야 한다.
기부자를 만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몸가짐’이라는 대답을 듣고 좀 의외라고 생각했다. 기도하는 마음은 들어보았지만 몸가짐이라니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대학생 때 만난 NGO활동가들은 열정적인 자세가 멋지긴 했지만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으로 후원자들을 만나는 모습은 왠지 좀 불편했다고 한다.
“홈페이지, 전화, 신문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기관을 접하게 되지만 모금가가 단체를 대표해서 기부자과 첫 번째로 만나는 사람일 가능성이 많잖아요. 그런데 제가 준비되지 않은 모습이면 그게 한마음한몸운동본부의 이미지가 될 것 같아요. 제가 무슨 말을 하기 전에는 제 모습을 보고 인식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래서 가장 신뢰감을 줄 수 있는 복장을 입고 바른 자세로 웃으며 들으려고 준비하는 자세가 먼저인 것 같아요.”
기부행사에 참석하는 재단의 대표로서 자신의 취향보다는 기부자에게 맞는 의복을 갖추어 입는 것이 최소한 기부자에 대한 존중이라던 윤정숙 전)아름다운 재단대표의 인터뷰가 떠올랐다. 그렇다. 기부자들은 모금가의 이런 섬세한 배려에 감동받는다.
모금가와 기부자의 관계를 ‘함께 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가끔은 상처를 받을 때도 있는데 특히 처음부터 끝까지 반말로 대하는 분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거절을 당했을 때보다 훨씬 더 힘들다고 했다.
모금가들이 기부자를 정성스런 마음가짐, 몸가짐으로 대하듯이 기부자도 누군가를 돕고자 하는 선한 마음이 있다면 그보다 먼저 모금가에게도 바른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함께 가는 사람들이니까.
그렇다면 정말 거절을 당했을 때는 어떤 마음일까?
“거절을 당하면 속상하죠. 내가 무슨 말을 잘못했을까? 한번 더 요청하면 들어주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하루 종일 가지만 빨리 잊는 편이예요. 대신 기부자가 원하는 후원사업을 하는 단체를 소개하기도 하고, 저희 단체의 다른 사업들도 소개하면서 꼭 기억해달라는 말과 함께 종교단체이다 보니 ‘이번에 기부를 하지 않더라도 함께 기도해 주세요.’ 라고 부탁을 드리기도 해요. 그리고 잊혀지지 않게 가끔씩 문자로 연락을 드리기도 하죠.^^”
인연을 맺기 위해 서두르지 않고 기다릴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 부드러운 미소와 단아함 속에 정말 대단한 내공을 가진 모금가임이 분명하다.
우리의 그릇에 맞게, 우리도 행복하게
한마음한몸운동본부는 천주교 서울교구 소속의 NGO로 추진하는 운동들이 내놓는 성과와 사회적 영향력에 비해 의외로 대중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다.
약 5만여 명의 회원으로 운영되는 거대한 단체이지만 조직은 가볍게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본부에서 추진하던 운동들이 조직화되고 개발역량이 커지면 독립단체로 설립, 운영되는 시스템이 이를 가능하게 한다. 이쯤 되면 비영리 인큐베이팅의 좋은 예가 되지 않을까?
“입사초기에는 우리도 다른 단체들처럼 규모를 키울 수 있는데 왜 사업들을 분리시키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하지만 단단한 조직이 되려면 가벼워져야 한다는 걸 일하면서 알게되었어요. 모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소액기부자들에게 증액을 요청할 수도 있지만 아직은 이 5만 명의 기부자들을 잘 예우하는 게 먼저 인 것 같아요. 지금은 우리 단체에 맞는 기부자 관리 시스템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마음한몸운동본부는 개인기부자의 비중이 95%로 절대적이다. 모금교육에서 배운 모델을 적용시켜보자면 아래층이 아주 두꺼운 기부조직으로 이것을 끌어올리기만 하면 모금의 규모도, 단체의 규모도 어마어마하게 커질 수 있다는 걸 알지만 우선은 기부자들과 긴밀한 관계가 우선이라는 얘기를 들으니 앞으로의 성장이 더 궁금해진다.
한마음한몸운동본부 (홈페이지 http://obos.or.kr/)
규모에 합당한 모금과 배분이 만들어가는 윤리적인 조직
“제가 ‘생애첫기부’를 맡고나서 기부자가 30명에서 400명으로 늘어났어요. 그런데 아무도 칭찬을 안해주는 거예요. ‘여기는 정말 마케팅적 관점이 전혀 없다.’ 오히려 제가 저를 칭찬하고 끝났어요. 그런데 단체에서 걱정하는 건 돈이 제대로 쓰여야 하는데 그걸 망칠 수도 있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우리 단체에서 하고 있는 치료비지원 사업이 1억 규모인데 제가 10억을 끌어왔어요. 담당자 1명이 몇 개의 기관과 연락하고 선정해서 일을 진행하고 있는데 모금이 10억이 되었다고 해서 직원을 당장에 늘릴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렇다보니 우리 조직의 실정과 규모에 맞는 모금을 하는 사람이 모금가라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모금은 다다익선이 아닌가? 배분의 역량을 넘어서는 모금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 소극적인 거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업과 배분의 역량에 맞게 모금을 개발한다는 것은 조직을 이끄는 리더의 확고한 마인드가 있어야 하고 조직의 윤리성과도 아주 밀접한 관계에 있다.
한국 복지재단의 김석산 회장도 생전에 ‘우리는 목표한 거 이상으로 모금하지 않는다.’를 강조했는데 이와도 맞아 떨어지는 말이다. 배분역량에 맞는 모금 활동과 투명한 운영은 조직을 윤리적으로 성장시켜 나감과 동시에 기부자들에게도 큰 신뢰를 갖게 한다.
6살 꼬마가 깨닫게 해준 나눔의 의미
모금가들은 수많은 요청과 수락, 거절을 경험 속에서 인생의 참 스승을 만나기도 하고 가끔은 의외에 상황이나 대답에 깨달음을 얻게 된다.
“생애첫기부로 인연을 맺은 6살 지안이라는 친구가 있어요. 여섯 번째 생일에도 저희 본부를 찾아왔어요. ‘지안아.아픈 친구들 돕느라 예쁜 치마 못사게 되었는데 어떡하지?’는 말에 ‘전 예쁜 바지 입으면 되요. 집에 있는 바지 입어도 훨씬 행복해요.’라고 의젓하게 대답하는 거예요. 그때만 해도 저 스스로 나눔에 대한 생각보다는 모금을 ‘모을 募쇠 金’으로만 이해하고 있었는데 6살 이 꼬마는 나눔이 마이너스가 아닌 플러스란 것 이미 알고 있었던 거죠.”
모금, 기부, 나눔이란 것이 받는 사람도 주는 사람도 자존감이 높지 않으면 서로 상처가 되고 기만이 되어 버린다. 주는 사람은 우월이 되고 받는 사람은 구걸이 되는 그런 아름답지 못한 상황. 이 작은 깨달음이 모금가 정문선이 기부자와 수혜자를, 아니 모든 사람들을 대할 때 정성을 다하게 만들어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변화, 도전, 진정성을 담다.
학부에서 마케팅을 전공한 만큼 비영리 조직의 모금가로서 그 역량을 아주 잘 발휘하고 있으면서도 모금전문가 과정, 심화과정, 스터디, 나눔 교육, 최근에는 CFRE(Certified Fund Raising Executive)과정까지 끊임없이 공부를 하면서 모금가로서 전문성을 키워가고 있다.
‘왜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세요?’라는 질문에 변화와 도전, 그리고 진정성을 대답으로 내놓았다.
“기부자들은 저를 감동시키고 교육은 저를 변화시켰어요. 모금전문가학교를 시작으로 그동안 많은 교육을 받고 모금가들을 만났는데요, 그분들 모두 많은 영감과 힘을 주었어요. 특히 제 생각을 바꿔놓은 전성실 선생님의 강의는 모금을 돈을 모으는 것으로만 생각하다가 돈을 주는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게 해 주었어요.
나눔에 대한 개념도 알게 되고 모금가에게도 자존감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죠.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의 CFRE 김현수 선생님의 교육을 통해 모금가가 모금만 생각해서 되는 게 아니라 조직 전체를 살펴야 하고 긴급한 상황에 대해서도 대비를 하고 있어야겠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CFRE(Certified Fund Raising Executive)를 3년 전에 처음 접하고 ‘아! 모금가도 도전할 수 있는 뭔가가 있구나.’하는 반가운 마음이었어요. 하지만 CFRE가 모금의 경력을 시험받고 검증하는 끝이 아니라 국제공인모금전문가라는 자격이 모금가가 가져야 할 최소한의 경력, 기본 자질, 역량을 갖추고 자부심과 책임감, 사명감을 가지고 이 일을 해 나갈 수 있는 힘이라는 측면에서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모금가가 가져야 할 전문성을 진정성이라고 생각해요. 좀 추상적인 말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무언가를 요청하기 전에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준비된 자세, 경청하는 태도가 모금가들만이 가진 전문성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 모금가 정문선의 공부는 단순히 돈을 많이 모으기 위함이 아니었다.
시작은 요청의 기술을 위한 배우기 위해서였지만 교육은 모금가가 가져야 할 ‘진정성’이란 전문성을 깨닫기 위한 과정이었다. 현장에서 만난 모금가들이 모금과 윤리, 소통의 과학, 사람과의 관계, 나눔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공부하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인터뷰 전에 미리 열어본 모금가 정문선의 가방은 평범했지만 그 가방에는 ‘진정성’이라는 그녀만의 비장의 무기가 들어 있었다.
*모금가 정문선의 가방에는 한마음한몸운동본부의 브로셔, 담당 사업 리플렛(꿈꾸는 마을, 내생애 첫기부), 기념품과 함께 요즘 읽고 있는 책 <비영리단체 모금전략>과 A4사이즈에 출력된 모금관련용어집이 들어 있다.
모금가 정문선의 행복
Q. 모금가로서 정문선은 어떤 여자예요?
A. 진짜 행복한 일 한다.
나이가 들어서도 모금가로 살고 싶다는 그녀에게 언젠가 조직의 리더가 되었을 때 가장 먼저 조직 구성원들에게 무슨 얘기를 해주고 싶은지 물었더니 ‘행복하게 일하자’라고 답했다.
“누군가의 행복을 위해 일하지만 자기행복을 먼저 찾는 게 우리에게 필요한 것 같아요.”
이런 리더와 일한다면 나도 행복할 것 같다.
그렇다면 가족들은 그녀의 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까?
“부러워해요. 꿈의 직장 다닌다고. 행복해하는 모습이 가족들 눈에도 보이니까요.”
역시 ‘행복’ 이었다.
행복, 청년, 일과 삶의 균형.
이 글을 처음 시작하면서 행복에 대한 정의를 내려준 책 속의 주인공들과 우리가 만난 젊은 모금가 정문선은 참 많이 닮았다.모금에 관심을 가지는 후배들이 많이 생겨 자신이 일을 통해 느끼는 행복을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Interviewer : 이경원, 정현경
정 리 : 이경원, 정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