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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한국모금가협회 황신애 상임이사 _ 인터뷰 보도자료

“20년간 5000억 모금.. 기부자가 변화시킬 세상 설계도 그려 보여주죠”

‘국내 1호 고액펀드레이저’ 황신애 한국모금가협회 상임이사

 

-한 기부자의 “보람 없다”는 말에 기부자 예우 문화 만들기로 결심

-기부자의 돈이 어떻게 흘러 어떤 곳에 도움 주는지 알려야

-끊임없이 나눈 대화, 일의 원동력

-펀드레이저, 기부자와 교감 중요

 

고액기부가 단번에 결정되는 경우는 없다. 기부를 결심하더라도 돈이 어디에 쓰일지, 어떤 효과를 낼지, 보람을 느낄 수 있을지 등 기부자의 고민은 계속된다. ‘고액펀드레이저’는 기부자의 결심을 확신으로 바꾸고, 선뜻 내놓은 기부금의 쓰임을 설계한다. 황신애(46) 한국모금가협회 상임이사는 불과 20년 전만 해도 고액모금 불모지였던 국내 시장을 개척한 ‘국내 1호 고액펀드레이저’다.

그는 모교인 한국외대의 모금 담당자를 시작으로 20년간 재단법인 서울대학교발전기금, 건국대학교, 월드비전 등을 거치면서 고액모금 전문가로 활동했다. 지금까지 그의 손을 거쳐 마련된 모금액만 5000억원에 달한다. 지난 14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황신애 이사는 “고액펀드레이저를 흔히 ‘기부자에게 큰돈을 받아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돈을 받기 전에 반드시 먼저 줘야 하는 것이 있다”면서 “기부자가 변화시키고 싶은 세상의 ‘설계도’를 그려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기부의 비전을 보여주는 사람

―설계도라는 게 정확하게 어떤 의미인가.

“모금할 때 밑도 끝도 없이 ‘우리에게 기부하세요. 좋은 곳에 쓰겠습니다’ 이렇게 해선 안 된다. 기부자에게 당신의 돈이 어떻게 흘러가 누가 어떤 혜택을 얻을 수 있는지 자세하게, 그리고 구체적으로 그림을 그려줘야 한다. 펀드레이저는 기부금으로 할 수 있는 사회공헌 활동을 기부자로부터 위임받은 사람이다. 기부의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며, 기부에 따른 결과도 보고해야 한다.”

―대학의 행정직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고 들었다. 어떻게 펀드레이저의 길로 들어섰나?

“1996년 한국외대 교직원으로 입사해 1999년 모금 부서로 발령받았다. 가장 중요한 업무가 ‘기부금 영수증 발급’이었다. 학교 안에서도 모금팀은 일종의 한직(閑職)이었다, 돈을 받는 곳이니 필요한 곳이긴 한데, 누구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다행히 외국의 기부문화에 일찍이 눈을 뜬 교수님들이 이런저런 제안을 해주셨다. 동문 홈커밍데이에서 장학금 조성을 유도하는 식으로 나름대로 모금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다 비영리 모금 컨설팅 회사인 도움과나눔의 최영우 대표의 교육을 우연히 듣고 모금 활동에 눈을 뜨게 됐다.”

―강의가 무척 인상적이었나보다.

“테크니컬한 교육이 아니라 아주 기초적인 이론 교육이었다. 사흘간 수업을 들으면서 ‘그동안 헛짓했구나’ 싶더라. 모금 업무를 하면서도 이걸 왜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잘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해 고민한 적이 없었으니까. 당연히 모금 업무 프로세스도 엉망이었다. 모금에 대한 기본 소양도 갖추지 못한 상태로 일했다는 생각에 오히려 오기가 생겼다.”

―당시 모금 업무가 어땠기에?

“고액기부자를 예우하는 문화가 없었다. 기부자 관리도 주먹구구로 했고, 기부는 한 번 내면 끝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기부자들조차 자신이 내놓은 돈이 어떻게 쓰였는지 당당하게 물어보지 못했으니까. 언젠가 한 기부자로부터 “보람이 없다”는 말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더라. 그래서 내가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황신애 이사가 활동을 시작한 2000년은 국내 기부문화 성장에 상징적인 해다. 세법이 개정되면서 5%에 불과하던 기부금 소득공제 한도가 10%로 확대됐다. 이후 정부의 기부 활성화 정책으로 2008년 15%, 2012년에는 최대 30%로 올랐다. 방송 모금도 시작되면서 기부액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황신애 이사는 “당시 기부 열풍 덕분에 비영리단체들이 폭풍 성장했지만, 소액 정기 기부자가 대부분이라 고액기부나 전문 펀드레이저에 대한 관심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어떤 식으로 바꿔나갔나?

“기부자를 일일이 만나기 시작했다. 기부금이 어떻게 사용됐으면 좋겠는지, 기존에 낸 기부금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를 설명해주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았다. 모금 부서에서 기부금 집행 내역을 알지 못했다. 그때까지 모금 부서는 돈을 모으고, 집행은 기획예산처에서 했는데 부처 간 협조가 안 됐다. 이 부분을 개선하려고 보고서마다 의견서를 붙여 냈다. 멋대로 남의 부서 업무방식 바꾸려고 한다는 힐난을 듣긴 했지만 제도 개선까지 이끌어낼 수 있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기부자의 알 권리’가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됐다.”

―‘고액펀드레이저’라는 타이틀을 내세운 것도 최초다.

“당시 모금 담당자 중에 스스로 ‘펀드레이저’라고 소개하는 사람은 없었다. 2007년 서울대학교발전기금에 합류할 때부터 명함에 ‘펀드레이저’라는 타이틀을 파고 다녔다. 이름 앞에 펀드레이저라고 붙이니까 행동부터 달라지더라. 교직원이 아니라 ‘진짜 모금가’로 거듭난 것이다. 그때부터 모금가들이 갖춰야 할 ‘윤리성’에 대한 고민도 시작됐다.”

마음속 이야기를 듣는 사람

―모금 분야 선발 주자니까 노하우를 배울 사람도 없었겠다.

“모든 걸 몸으로 직접 경험하면서 깨쳐야 했다. 100만원부터 1000만원, 1억, 10억, 100억원까지 내놓는 여러 기부자를 만나면서 케이스도 쌓이고 자신감도 생기더라. 해외 연구 자료나 기부 관련 서적을 찾아 읽기도 했는데, 국내 정서와 안 맞는 부분이 많았다. 기부자들과 끊임없이 나눈 대화의 조각을 이어붙인 덕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기부자와의 대화가 중요하다?

“증권업에 종사하던 학교 동문이 있었다. 억대 기부자였기 때문에 사연이 있지 않을까 싶어 사무실로 찾아가 만났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왜 기부했느냐”는 물음에 “재학시절 학교생활을 소홀히 했는데, 후배들은 공부할 수 있을 때 마음껏 하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어서 기부를 했다”고 하셨다. 그러더니 “이런 얘기는 처음 해본다”며 웃으셨다. 한참 이야기를 듣고 돌아갔는데,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분에게서 2억원씩 5년간 총 10억원을 기부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기부자와 대화를 나누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지금까지 모금 총액만 무려 5000억원이 넘는다.

“고액펀드레이저 활동이라는 게 개인적으로 만나서 기부를 이끌어내는 것뿐 아니라 캠페인을 기획해서 모금하기도 하니까 단위가 커 보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끌어낸 기부금을 구분하면 2000억원쯤 될 것 같다. 팀 단위로 진행한 ‘고액집중모금 캠페인’까지 합하면 5000억원이 넘는다.”

―고액집중모금 캠페인은 뭔가?

“기간을 정해놓고 캠페인 식으로 고액모금을 집중적으로 펼치는 거다. ‘캐피탈 캠페인’이라고 하는데 국내에서는 2006년 서울대가 처음으로 시도했다. 4년간 3000억원을 모으는 게 목표였다. 고액모금 하나 성사시키는 일도 어려운데, 산술적으로 따지면 불가능한 일이다. 결과부터 말하면 3514억원 모금으로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 펀드레이저로 구성된 팀의 치밀한 전략이 주효했다고 생각한다. 당시 모금 전략으로 서울대, 하버드대, 예일대, 옥스퍼드대를 비교하면서 동시에 국가경쟁력과 교차 분석한 결과를 내세웠다. 당시 서울대는 전 세계 지표에서 47위 수준이었는데, 인재 해외 유출을 언급하며 기부자를 설득할 메시지를 선명하게 했다. 전문 펀드레이저들이 활동해 성과를 낸 최초의 캠페인이기도 하다.”

―현재 국내 전문 펀드레이저는 몇 명 정도인가?

“현재 국내에서 활동하는 전문 펀드레이저는 100명 미만으로 추정된다. 여전히 적다. 흔히 거리 모금이나 해피빈 같은 크라우드펀딩의 모금 담당자를 펀드레이저로 착각할 수가 있는데, 이들은 ‘캠페이너’라고 부른다. 펀드레이저와 캠페이너는 큰 차이가 있다. 캠페이너는 기부자와 교감 없이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던지고 기부자가 동의하면 돈이 모이는 구조로 모금한다. 이런 상황에서 모금 담당자는 마케팅 콘텐츠를 잘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다. 반면 펀드레이저는 기부자와 충분히 대화하고 교감하면서 공감을 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기부자의 인생을 이해하는 사람

황신애 이사는 대학, 재단, 비영리단체 등 여러 모금 현장을 경험하면서 직접 몸으로 깨친 게 많다고 말했다. 지난 2014년에는 비영리 영역에서 활동하는 모금가들의 전문성·윤리성 강화를 목적으로 ‘한국모금가협회’를 설립했다. 모금가 교육을 전담하는 국내 최초의 기관이다.

―모금 시장에 ‘전문성과 윤리성’이라는 화두를 던진 셈인데.

“모금은 전문성과 윤리성 두 날개로 날아야 한다. 전문성을 갖추더라도 윤리성이 결여됐다면 그건 모금이 아니라 사기다. 전문 교육에 대한 요구는 꾸준히 있었다. 협회를 만들고 전문가 과정을 만들자마자 현장에서 즉각 반응이 왔다. 교육 수요가 많아 전국 단위 교육을 수행하기도 했다. 특히 지역은 교육 기회 자체가 부족하기 때문에 교통비를 들여가면서 무료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사실 모금 교육은 정부가 나서서 해줄 몫이 있는데, 법률 위반 시 처벌하는 데만 머무는 점이 아쉽다.”

―기부에도 트렌드가 있지 않나? 최근 흐름은 어떤가?

“과거에는 소액 정기 기부와 부동산 기부가 대세였다면, 최근에는 유산 기부가 고개를 들고 있다. 유산 기부는 일반적인 기부와 완전히 성격이 다르다. 일반 기부는 보통 월수입의 일부를 내는 거지만, 유산 기부는 인생 전체를 살아오면서 모은 재산의 일부 혹은 전액을 내놓는 거다. 유산 기부 약정을 체결해도 사망 시까지 집행되지 않는다. 실적에 급급해 서둘러 진행할 수 없는 거다. 유산 관련 법률 지식은 물론 기부자가 생각하는 인생의 철학까지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전문가가 필요한 셈이다. 영국의 경우 유산 기부가 전체 개인 기부의 30~40%를 차지하지만, 국내에는 관련 통계도 없다. 아마 0.1%도 안 될 거다. 하지만 기부문화의 변화 추세를 보면 앞으로 유산 기부는 더 늘어날 거다.”

―국내 비영리단체들도 유산 기부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다.

“대부분의 NGO가 일반 기부를 받는 것에 익숙하다 보니까 기부자에게 많은 공을 들이지 못했다. 유산 기부라고 하면 기부자의 전 생애를 관통하는 철학과 기부 의도까지 커버해야 하는데, 이를 수행할 수 있는 전문가를 구하기 어려울 거다. 현재 유산 기부를 맡을 수 있는 전문 펀드레이저가 국내엔 10명이 채 안 된다. 단체에서는 우선 기부자와 깊은 관계를 형성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기부자 입장에서 고액을 내놓으려면 인생을 살아오면서 좋은 파트너로 지낸 기관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20년 경험상 기관에 대한 관계가 깊어질수록 기부액은 반드시 커진다.”

―경력 20년의 펀드레이저가 생각하는 ‘기부’란?

“기부는 돈으로 세상에 꽃을 피우는 일이다. 기부를 결심하고 조직에 전달하는 게 끝이 아니라 기부금 사용에 대해 설계하고 어디에 어떻게 쓰였는지 정보를 알리는 일까지가 기부다. 고액펀드레이저는 이 일이 잘 성사되도록 하는 ‘안내자’다.”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

[출처-조선일보 더나은미래]

[기사원문 보기-http://futurechosun.com/archives/43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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